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표가 난다. 쓸고 닦지 않아도 사람이 살고 있는 온기가 있는 집과 아무리 번듯해도 사람이 없는 빈 집은 그 경계가 명확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없어도 폐허 속 풀은 자란다. 오히려 더욱 보란 듯이 담벼락을 타고 내려오는 중이다. 봄과 초여름의 기운을 제대로 흡수 했는지 반짝이는 햇살 아래 풀잎은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이대로라면 이 집은 머지않아 수풀에 삼켜질지도 모르겠다.
재개발이 시작된 대전 중구 목동 3구역의 모습이다. 이 일대는 최근 수풀에 잠식 당하고 있는 폐허, 그리고 교회, 선교사집, 또 남은 몇 채의 집을 제외하고 동네 일대가 모두 밀렸다. 과연 이곳에 집이 있었던가 할 만큼 거대한 외벽에 감춰진 맨 땅의 민낯은 무섭도록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폐허를 둘러 보다 보니 아무도 살지 않는 충북 보은에 있는 시골집이 생각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아무도 정착해서 살지는 않는다. 명절이나 집안 어르신 생신이면 으레 모였다 가는 임시 거처 같은 곳이다. 시골집은 건물이 총 3채였는데, 아궁이가 있던 사랑채는 2008년 불이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사랑채 위에서 옥수수와 고구마와 같은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시골집 동네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벽돌집을 올리고 산과 논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뜨끈했던 사랑채 아랫목, 작은 창 뒤로 보이던 개울가, 동네를 품어주던 산세는 이제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무형문화재 14명을 대상으로 독자에게 말하듯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구술 자서전을 발간했다. 무형문화재 전수자로서의 삶보다는 인간 그리고 인생 풀 스토리를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무형문화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보호할 가치 있는 국가의 자산임을 보여주는 예다.
이렇듯 한 인간의 삶도 그 자체가 역사이고 남겨야 할 자산인데, 집 한 채 혹은 동네와 마을은 더더욱 가치 있는 기록의 대상은 아닐까. 대전은 1900년대 대전의 시작과 함께 출발한 동네가 다수 있다. 소제동, 정동, 선화동, 목동은 말 그대로 대전의 산증인이다.
"어른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아프면 마음이 초조해져요. 이 분들은 살아있는 대전의 역사예요.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보면 대전의 이야기는 하나도 남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던 한 연구원 대표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집도 동네도 마을도 인간의 삶과 같은 맥락에서 구술될 가치가 있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저 빈 집에도 역사와 이야기는 분명 존재했을 거다.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온기가 있었던 동네를.
이해미 교육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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