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여자] 때밀이 수건-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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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여자] 때밀이 수건-최승호

  • 승인 2019-06-04 11:36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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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제공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돌비누 같은 경(經)으로 문질러도



무명(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 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羊)떼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

그들이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죽음이 우리들 때를 밀러 온다.

발 빠지는 진흙 수렁 늪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진탕 놀다온 탕아를

씻어 주는 밤의 어머니,

죽음이 눈썹 없이,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알몸을 기다리신다.

때 한 점 없을 때까지

몸이 뭉그러져도 말끔하게 때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죽음,

죽음은 때를 미워해

청정한 중의 해골도 씻고 또 씻고

샅샅이 씻어 몸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그렇다면 죽음의 눈엔 온몸이 다 때란 말인가?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쾌함을. 몸에 붙은 찌든 때가 밀려 씻겨나갈 때마다 내 몸은 새로 태어난다. 목부터 상체와 다리, 팔과 등과 엉덩이가 다시 깨끗한 몸으로 정화되는 느낌. 몸과 더불어 내 마음도 정신도 맑아진다. 고행하듯, 수양하는 구도자가 따로 있을까. 목욕재계란 이런 게 아닐까. 육신의 때와 정신의 때를 벗겨내야 한다.

교회에서, 법당에서 헌금하고 불공드리며 기도하고 기도한다.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나무관세음보살. 천국이 멀지 않았고 극락왕생이 기다린다. 남편 사업 잘되게 해주시고 아들 f딸 좋은 대학 가서 좋은 곳 취직하게 해 주십시오. 부자되게 해주시고 우리 가족 건강하게 돌봐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만 믿습니다. 제 죄를 사하여 주시고 부디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죽음의 신의 대리자는 기다린다. 문밖에서. 어서 당신의 때를 밀어라. 덕지덕지 더깽이진 묵은 때를 벗겨내고 사자의 명령을 기다려라.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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