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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논에서 농사지을 때를 돌이켜 본다. 구불구불한 논둑이 층층이 쌓인 것을 바라다보자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운 모습이 보기 좋지만, 그 정겨움 속에도 많은 갈등이 내재 돼 있다. 위의 논에 물이 차고 나서 아래 논에 물이 든다. 어길 수 없는 일이다. 벼의 성장에 따라 물을 가둬야 하는 시기, 말려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도 위에 논의 상황에 따라야 한다. 물이 없어 논밭이 타들어 갈 때 애타는 마음, 어느 마음인들 다르겠는가? 몰래 물꼬를 터놓기도 하고, 분쟁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에 항상 농기구를 지참하고 다닌다. 물꼬 보러 나갈 때는 삽이나 삽괭이를 소지한다. 다툼이 벌어지면 큰 싸움이 된다. 싸움으로 인명 피해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수로를 옆에 따로 내기도 했다. 손바닥 크기 작은 논이 입는 토지 손실로 그것도 쉽지 않았다.
들판 상황은 좀 달라도 분쟁이 발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지 정리하며 모든 논이 수로를 접하게 되고, 수로에 물만 적당히 보급되면 싸울 일이 줄어들었다. 구불구불한 논둑을 바로 잡아 농지도 줄지 않았다. 기계로 일할 수 있어 편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해의 절반 가까이 물길도 끊기고, 벼 그루터기만 도열 해 있다.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스산한 바람만 스칠 뿐이다.
살다 보면 배려와 양보도 해야 하고 함께하기도 해야 한다. 배려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뻔히 알면서, 남의 농사야 어떻게 되던 괘념치 않는다면 둘 다 망치게 된다. 그를 아전인수我田引水라 하던가? 내 논에 물 끌어들이기만 열중이다. 자신의 농사 망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살리기에 안달이면서 남의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나만 살 수 있겠는가? 내 속이 타면 다른 사람 속도 타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배려의 한 방편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세상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옛말이긴 하지만, 묘하게도 첩이 첩 꼴 못 본다는 말이 있다. 시집살이 고되게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 시집살이 가혹하게 시킨다는 말도 있다. 전근대적인 불행한 문화이다. 성숙한 문화사회로 갈수록 매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는 것이다. 우리 정당이나 사회는 입장이 서로 바뀌어 보았다. 역할극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집권세력과 견제세력이 된 것이다. 요즘 정국을 보자면 전근대적 사고가 개선된 것이 아니라, 더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농사가 제대로 되려면 배려와 더불어 농지정리도 잘해야 한다. 농법도 때와 천지운행에 맞추어 져야 한다. 그래야 풍년이 가능해진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면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제도나 법을 잘 만드는 것이 서로 즐겁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이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요, 고급문화이다.
내 논에만 약을 친다고 병충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옆 논으로 피했다 다시 온다. 병충해를 없애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소중한 것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함께 가야 한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기르는 농작물의 생태도 잘 알아야 한다. 겨울을 나야 열매 맺는 식물을 봄에 심으면 가을에 거둘 게 있겠는가? 죽으라고 해놓고, 입으로는 살아야 한다고 외치면 되겠는가?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해야 그나마 거둘 게 있지, 농사철에 들놀이나 엉뚱한 일 하고 풍작을 기대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농사가 정치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옆집 농사 망친 덕에 내 농사 잘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옆집 농사가 잘되어야 내 농사도 잘되는 것이다. 농부의 발짝 소리를 들으며 벼가 자란다 하지 않는가? 거기에 진실이 있다. 상대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으로 농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깎아내려 나를 돋보이려 하지 말자. 더 잘해서 돋보이게 하자. 거짓은 정보사회 이전에도 통하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지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이다.
씨앗이 좋아야 결과도 좋아진다. 농사를 망친 쭉정이로 다음 해 농사가 잘될 수 없지 않은가? 품종 개량이라도 해놓았으면 모를까, 이번 농사 망쳐놓고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물론 씨앗을 달리 조달하기도 한다. 그것이라도 바로 구해야 기대할 것이 있다. 말로 또는 거저 되는 것은 세상천지에 없다.
패스트트랙으로 꽉 막힌 정국을 보면서 농사일을 떠올려 보았다. 거기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거창한 철학적 문제도 아니다. 본질이 아닌 것으로 대립해 있는 것이 보기에도 민망하다. 늘 하는 말이지만, 리더는 전체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솎아내는 것이 아니다. 오디션이 아니라 하모니를 유도하는 것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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