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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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5-3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물이 어떤 기준에 의해 분간되는 한계를 '경계'(境界)라고 합니다. 그리고 경계는 어떤 지역과 다른 지역을 구분하는 한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집을 지을 때 담장을 없애거나 낮추어 경계를 허물기도 하지만, 담장이 없다고 해서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집과 집 사이에도 경계가 있고, 우리가 매일 다니는 길에도 엄연히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존재합니다. 이런 경계는 비단 보이는 사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선과 악의 경계, 좋음과 싫음의 경계 등 우리가 사는 거의 모든 영역에 존재합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는 경계는 분명히 어떤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그 경계를 넘는 것은 때로는 다른 영역에 대한 침범이 되기도 하고, 그 경계에 따라서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기도 하고 또한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그 경계 내에서 책임과 의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명확하게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삶을 사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법이나 제도를 만들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도 허용의 범위와 책임과 의무의 범위를 정하고 구분하는 중요한 경계를 명확히 인지시키고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가 간의 경계를 나타내는 국경의 경계는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계입니다. 그러나 만약 자동차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을 여행할 때, 국가 간의 경계를 나타내는 국경선이나 국경검문소는 흔적만 남아있고 계양되어 있는 국기를 보고서야 비로소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인식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화폐조차도 유럽연합은 유로화라는 단일화폐로 화폐의 통합을 통해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통합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이유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 등을 통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서로 다른 사회에 존재하는 경계를 허무는 것이고, 이런 경계 허물기를 통해 서로가 이해하고 화합하는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계를 허물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국가들 간에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에 분명한 구별과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별과 경계의 존재는 일부 국가의 국민들 사이에서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인식은 비록 유럽연합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경계들을 우리는 때로 허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고 새로운 경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경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경계를 짓고, 허무는 것은 그래도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오해와 왜곡을 거듭하는 경계가 되어, 우리는 그 경계에서 혼돈과 갈등, 불명확성과 모호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만약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떤 경계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경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경계의 이쪽과 저쪽의 구분을 그래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나 판단, 그리고 인식은 대부분 경계의 근처에서 흐릿한 경계의 양쪽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개인과 조직, 개인의 권리와 공익의 경계,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의 안보, 인간적 번뇌와 이성적 판단 등등 우리가 서 있는 경계의 모호성과 불명확성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는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는 흔히 새로운 문제들을 발생하게 합니다. 이런 경계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용납되지 않거나, 새로운 오해나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로 나타나거나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계라는 것을 통해 그 경계가 절대로 악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독일 유학시절 중국학을 부전공하면서 중국 청나라 말기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강유웨이(강유위, 康有爲)의 정치사상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그가 쓴 『대동서』(大同書)를 읽을 적이 있습니다.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내게 중국어로 된 방대한 분량의 『대동서』를 읽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만민공동체, 세계정부 구성, 가족이라는 경계의 폐지, 인종 간 차별 폐지 등 지금도 조금 황당하고 이상주의적인 사상이 담긴 『대동서』의 내용은 당시 중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당하고 실현 불가능한 『대동서』의 내용에서 내가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인간이 태어나면서 겪는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경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각종의 경계를 인간이 허물어야 할 경계와 장애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유웨이의 주장처럼 우리는 태어나면서 많은 경계에 의해 구속과 속박을 받고 있는 것이고, 이런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고 우리가 행복을 얻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들에 의해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경계들에 의해 더 큰 어려움과 갈등과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것도 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것도 그렇고, 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남들의 기준에서는 이해되지 못하거나 옳지 않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갈등도 그렇습니다. 또한 나만의 이익이나 소수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우리는 소위 '객관적'이라는 기준으로 개인적으로 새로운 경계를 짓거나 허물어서 이 경계를 악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재하거나 만들어진 경계나 허물어진 경계에 의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고 그로부터 갈등과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우리 자신의 경계를 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합니다. 아마도 일상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어떤 사소한 판단조차도 이런 경계에 의한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경계를 만든 것인지를 보면서, 우리가 만든 경계나 허문 경계가 정말 옳은 것인지, 그리고 그 경계를 통해 또 얼마나 많은 오해와 왜곡과 편 가르기를 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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