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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게루 지음│박재영 옮김│민음사
"반 시게루는 지난 20년간 전 세계의 재해 현장을 돌며 적은 비용으로도 단순하고 위엄 있는 피난처와 공공건물을 지어 고통받는 피해자를 도왔다. 그의 인도주의적 헌신은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
201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은 반 시게루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위와 같이 밝혔다. '재해 현장', '적은 비용', '인도주의적 헌신'이라는 표현. 많은 '유명 건축가'의 이름에 따라붙는 국가 차원의 주요 시설, 신흥 강국의 도시를 장식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에 대한 찬사가 아니었다.
반 시게루의 건축 업적은 달랐다. 그는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 타이완 대지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등 각종 재해 지역 그리고 유엔 난민 기구, 르완다 등 세계 각지의 내전 지역에서 끊임없이 소임을 다해 왔으며, 이에 걸맞게 거창한 건축 문법을 구사하기보다 사회적 약자와 피난민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건축 소재 및 공법을 개발하는 데에 천착해 왔다. 책 『행동하는 종이 건축』에서 소개하는 '종이 건축'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의 '종이 건축'은 두루마리 휴지 심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철심에 접착제를 바른 종이테이프를 감아서 지관을 만들고 기둥이나 들보, 프레임의 구조재로 사용한다. 그에게 종이는 "진화한 나무"이며 "쉽게 방수할 수 있고 벽지처럼 난연화도 할 수 있는 첨단 소재"다. 종이로 지었으니 건물 자체의 무게가 가벼워 내진성도 뛰어나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베트남 난민들을 위해 지었던 종이 성당은 2005년 해체돼 당시 큰 지진이 일어난 대만 푸리로 옮겨졌다. 20년이 지나도록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 곁을 지킨 것이다.
그만의 건축 철학은 이색적인 이력을 따라가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럭비 선수를 선망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건축가를 지망하게 된 저자는 과감하게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전위적인 서던 캘리포니아 건축 대학과 전통적인 분위기의 쿠퍼 유니언 대학을 두루 경험한다. 그 후 유명 건축가의 도제로 들어가는 대신, 전시회장 기획자로 경력을 시작하는 등 굉장히 파격적인 선택을 이어 간다. 처음부터 '전형적인 건축가'의 길에서 벗어나, 건축가의 참된 사명과 사회적 역할을 끊임없이 자문하였던 반 시게루는, 마침내 모두를 위한 건축, 이를테면 일반 대중을 넘어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건축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연약하지만 변화무쌍하고 가격과 제조 면에서 제한이 없으며 친환경적인 소재, 즉 '종이'를 맞닥뜨리게 된다. 재난 및 재해 상황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적용 가능하며, 어느 누구보다 안전한 보금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안락한 터전을 즉시, 오래도록 제공할 수 있는 건축을 실현해 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반 시게루는 혁신적인 소재 및 공법을 창안해 냈고(혁신을 위한 혁신이 아닌, 인도주의적 실천을 위한 혁신), 이것은 그의 '종이 건축'과 '건축 철학', '독창성'의 근간이 됐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건축을 대원칙으로 삼은 사람답게, 반 시게루는 1996년 NGO VAN(자원봉사 건축가 기구)을 설립했다. 그의 건축 역정을 담은 자서전 같은 책 속, 함께 일한 자원봉사자들의 이름이 많이 담긴 것도 그답게 느껴진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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