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충청권의 모 의원은 개헌 정국 속에 가진 사석(私席)에서 "충청권에서 헌법 명문화 주장이 있는 데 (정치적) 힘도 없으면서 그러면 안 된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법률위임으로 가야 한다"며 민심과는 거리감 있는 말을 쏟아냈다. 당시 잘못 들은 듯 싶어 재차 의견을 물었지만,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개헌의 경우 국회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지만, 법률은 과반의석만 확보하면 된다는 것이 그 의원이 내세운 논리로 보인다. 좋게 해석하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선 민의 관철을 위한 정면돌파 노력 없이 주류(主流)에 타협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나아가 행정수도 개헌에 대한 충청권 염원을 비하하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있다. 충청 지역주민들로부터 표를 받아 '배지'를 달은 국회의원의 발언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충청 정치권의 서글픈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화는 또 있다. 당내 선거출마를 고민하던 지역의 모 의원은 "(기사를 쓸 때 나에 대해서)충청출신인 것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귀띔한 바 있다. 표 대결 구도 상 출신지를 부각하면 이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충청권 의석수가 영남과 호남권에 미치지 못하며 이들 지역처럼 응집력도 없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말로 들린다.
1948년 제헌 헌법이 제정된 이후 모두 12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는 데 충청 출신은 간접선거로 뽑힌 윤보선 대통령(아산)이 유일하다. 영호남은 정권을 번갈아 가며 차지하면서 대한민국 주류로 군림해 왔고 충청권은 이에 가려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현대 정치사의 영향일까. 20대 국회에서도 충청 의원들은 정국을 스스로 주도하려는 노력보다는 다른 지역 정치권의 눈치부터 보기 바빴던 것 같다. 지역 현안관철을 위해선 정파를 초월해 뭉치는 영남과 호남 정치권에 비하면 충청 정치권은 '모래알'에 가까웠던 점도 아쉽다. 2013년 5월 충청권 주민등록인구가 호남권을 처음으로 추월했고 유권자 숫자도 역전됐다. 집권여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충청 출신이며 야권에서도 4선 이상 중진 의원과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원외인사 등 인재풀이 넓다. 대전은 미래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인 4차산업혁명특별시로 세종시는 사실상의 행정수도로서 위상이 공고해지고 있다. 충남과 충북은 각각 환황해권과 강호축(江湖軸·충청강원호남) 메카로 뜨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미래발전 비전으로나 충청 정치가 위축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제는 스스로 강해질 때다. 자강(自强) 없는 연대는 비주류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강제일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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