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가족'과 '남'사이의 경계가 핏줄이나 서약 혹은 서류로 뚜렷하게 나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발랄하고 따뜻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육상효 감독의 최근작 '나의 특별한 형제'는 누구든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또한 누구든 그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질문을 던진다. '누가 나의 가족인가.'
똑똑한 머리를 가졌지만, 그 머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세하와 튼튼한 몸을 가졌지만, 그 몸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머리를 가지지 못한 동구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관계에 있다. 물리적 결핍뿐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감정의 결핍도 채우는 이 두 사람 앞에 사람들은 늘 '관계의 이름'을 묻는다.
"대체 두 분 어떤 사이인가요?" 동네 주민센터나 은행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물어올 때 그들은 '가족'이라 답할 수 없었지만, 누구든 쉽게 떠올리는 가장 가족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새벽 세 시에 알람이 울리면 동구는 누워 있는 세하의 자세를 바꿔주고, 컵 사이즈에 맞춰 빨대 길이를 조절해 준다. 도장을 찾지 못하는 동구를 위해 세하는 몇 번이고 쉽게, 숨을 고르며 도장의 생김새를 설명하기도 하고, 수영하고 싶어 벽에 머리를 찧는 동구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한다.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 너무나도 맛있으니까, 내 입으로 먼저 넣을 땐 눈을 흘기기도 하지만, 결승점에 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열심히 팔을 저어 기어코 완주한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세하와 동구는 같이 있으면 신나고 좋은 사람이고, 내가 없으면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이고, 날 위해 길이가 다른 빨대 수십 개를 가방에 챙겨두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함께 있고 싶은, 진짜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피가 얼마나 진하게 섞였는가, 어떤 서류에 도장을 찍었는가로 내 가족이 누구인지 뻔하게 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내게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것이 필요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연인이 아니어도, 남녀가 아니어도 가족으로 함께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물음과 바람을 담은 이 영화와 달리 우리 시대는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관계'에 매우 인색하다. 연말정산 서류에서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피 한 방울은 섞인 누군가여야 한다. 다급한 응급실에서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있는 사람도 '공인된' 누군가여야 한다. 돌봄, 휴가, 수당 등 각종 가족지원제도는 사회가 인정한 가족 구성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되어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엄연한 '가구'로 이름 붙여져 현시대의 '대세 가구'가 된 지금, 과연 누가 가족인지, 누가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젓가락질할 수는 없지만, 라면은 너무 먹고 싶은 내 마음 알고, 뜨거운 면을 후후 불어 내 입에 넣어줄 사람이 있다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해도 우린 함께 있어야 한다.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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