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이중에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기념일도 있지만 유권자의 날처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세계인의 날이나 한부모가족의 날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정되는 것들도 있다. 물론 부부의 날처럼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만나 하나(1)가 되는 뜻으로 정해진 날도 있다. 법정기념일이 아닌 기념일까지 더한다면 하루건너 기념일이 있을 정도인데, 앞으로는 더 많이 다양한 기념일이 제정되지 않을까 짐작된다.
사전을 찾아보면 기념일(記念日)은 어떤 일을 기억하고 감사나 다짐이나 추모 등을 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지는 날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문화사회를 위한 세계인의 날이나 올해 처음으로 제정된 한부모가족의 날을 생각해보면 각각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별하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알아주며 관심을 가지자는 의미 또한 크게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가치를 인정해주며, 서로 다른 입장을 알아주고, 나름의 수고를 위로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과 노력을 격려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이팝나무가 흐드러진 오월 필자의 마음에 남는 기념일은 제자들과 함께한 햇살 밝은 어느 날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15년이 지난 제자들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였다. 어느 새 세련되고 성숙해진 제자들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이십대 초반 풋풋하던 그 느낌이 그대로여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느라 전공과는 상관없이 살았던 P는 뒤늦게 일을 시작했다며 간호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환자의 증상도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직장 동료 행동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모습, 늦은 출발이 조금은 불안하지만 나름 자신 있어 보여 대견했다. S는 꼼꼼하고 성실하던 학생 때 모습 그대로 보건직 공무원이 되어 안정되게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연락 한번 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그 모습이 그대로 선물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열정적이던 R은 외국에 나가서 간호사를 하며 지냈는데 몇 년 전 어려운 일을 겪는다고 전해질 뿐 직접 연락이 끊겨 내심 걱정했던 제자이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털어놓는 것을 보니 회복되어가는구나, 다시 힘을 찾고 있구나 싶어 진정 반가웠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읊어지는 시간이었다. 누가 내 마음을 좀 알아달라는 절절한 외침.
사람들은 저기 뛰어가는데 / 아직 혼자 시작도 못했어 / 죽을 만큼 힘들게 하고 있냐고 / 노력하고 있냐고 / 열심히 사는 척하며 눈치만 보게 돼 / 시계는 나를 자꾸만 보채 / 서둘러야해 / 누가 내 맘 좀 알아줘 / 이런 내 맘 좀 알아줘 / 기댈 곳이 필요해 / 누가 내 맘 좀 알아줘 / 제발 내 맘 좀 알아줘
웃다가 울고, 또 울다가 웃었다. 필자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기억을 영상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리는 제자들.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그들의 젊은 날 스토리에 얽혀있는 필자와의 추억을 되새겼는데, 그 때 나눈 대화나 행동이 졸업 후에도 때때로 버팀목이 되었다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 누구의 선생님이라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지만, 책임 또한 무겁구나 싶으면서도, 행복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며 우리는 2019년 5월 스승의 날을 기념하였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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