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인 2019년 5월15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만학도 할머니가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습니다./연합DB |
얼굴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즐거웠다. 일선학교 중·고등학생들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하는 할머니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실에 들어갔다. 교탁엔 반장 할머니가 사무실서 갖다 놓은 출석부가 기다리고 있었고, 출석부 옆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즐겨드는 따뜻한 믹서커피 한 잔이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늘 보약이라 생각하고 할머니들의 마음을 음미하며 마셨다. 그리고 영약을 마시는 즐거움으로 보약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평상시 못 보던 간식거리가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스커피에 쑥으로 만든 개떡이며 초콜릿 음료수(야쿠르트), 초코파이, 목 캔디가 서열 경쟁의 자리다툼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보통 경쟁이나 싸움이라는 것은 필요한 무엇을 얻기 위해, 쟁취하기 위해 하는 다툼인데 오늘 수업 간식거리들은 정성과 사랑을 주기 위해서 아니, 베풀기 위해서 하는 다툼이니 간식거리들의 별난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들은 눈 뜬 장님 면한 것이 마냥 고마워서, 광명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희열감에서,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이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을 면케 해준 선생님께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리고, 위해 주고 싶은 생각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아름다운 싸움임에 틀림없었다. 할머니들의 별난 간식거리의 싸움에 가슴이 뭉클했다. 출석부 옆에 놓인 그것들은 아이스커피, 쑥 개떡, 초콜릿, 윌 음료수, 초코파이, 목 캔디의 간식거리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정성과 감사의 마음이 바리바리 싸이고 올망졸망 담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들은 형상만 물질이었지 내용물은 감사와 정성과 사랑을 담은 것이 확실했다.
이런 것은 비싼 관람료를 주고도 볼 수 없는 진풍경임에 틀림없었다. 그저 이런 때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제격이겠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퇴임을 하고서 아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마누라 먼저 보내고 남매 시집장가 다 보낸 텅 빈 집에 늙은이 혼자 온 종일 쳐다보는 것이 천장과 벽밖에 없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잡념과 공상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 선택한 삶의 방식이 바로 바쁘게 뛰는 것이었다. 그대로 있다간 감당할 수 없는 잡념 공상에 시달려 우울증이라도 걸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간파하지 못한 주위의 친구들은 걱정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너 그렇게 바쁘게 생활하다 과로로 일찍 뒈지고 싶어 그러니? 야, 인마, 퇴직은 쉬라고 만들어 놓은 거야"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분서주하는 생활 속에서도, 내가 이렇게 지치지 않고 아픈 데 없이 재능 기부활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빤한 요일이 없을 정도 뛰고 있다. 법원 조정위원 조정 활동, 중·고 검정고시 학생지도, 효 진흥원 효 문화 지도사 안내 해설, 할머니들 문해교육, 일선 초·중·고등학교 효 강의 등과 같은 일인다역의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렵지 않고 체력 유지가 되는 걸 보면 축복받은 느낌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타고난 체력도 있겠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건강유지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거기다 주변에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의 따뜻한 가슴이 있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복병으로 숨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나에게는 힘이 되고 흥이 나게 해서 보약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을 것도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하며 정성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에 이틀 정도 나가는 문해 교육 교실에는 60세 이상 83세까지의 할머니들이 한글 눈을 뜨기 위해 안간 힘을 다 쏟고 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이라 지각 능력이 떨어져 조금은 서툴고 부족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글자를 알아가고 있다. 이들이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터득한 한글 낱자 하나하나는 광명한 세상을 만드는 기쁨과 희열이 되고 있다.
글자를 터득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마냥 기뻐하고 좋아하신다. 할머니들이 느끼는 기쁨의 정도나 밝은 표정은 나의 기쁨이며 즐거움이기도 하다. 나와 할머니들이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백중지세(伯仲之勢)가 될 것이다.
할머니들은 당신들에게 한글을 깨우쳐 주고 구구단을 알게 해 준 것이 마냥 고마워서 쑥 개떡이나 잡채를 만들어 오시기도 한다.
맛있는 청국장 만들다 아니, 찹쌀고추장 만들다가 선생님 생각이 나서 퍼 왔다며 그런 것을 가져오기도 한다.
정말 사람냄새치고는 호감이 가는 따뜻한 가슴이며 감칠 맛 나는 정을 느끼게 하는 노인들이다.
감사할 줄 알며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본보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분들은 늦게 배운 한글 터득이어서 지적 능력에는 좀 서툴고 부족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정을 주고, 감사하며 사는 데에는 서툴 것이 전혀 없는 챔피언 감이되고서도 남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서한문 수업을 하고 편지를 쓰게 했는데 83세 할머니의 편지가 가슴을 찡하게 하여 소개해 본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까막눈으로 살아온 날이 용하게만 생각됨니다. 글자를 모르니 어디 나설 수도, 누구네 집을 방문할 수도 업섰슴니다. 눈 뜬 장님 까막눈이라 버스를 제대로 타고 내릴 수 없어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씀니다. 그 한과 가슴에 매친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업섰씀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저에게 한글 눈을 뜨게 해 주시어 감사함니다. 암흑 속에 살던 장님이 광명세상을 보게 된 거 같아 너무 감사함니다. 선생님 고맙씀니다.
내 나이 83살. 평생 지금처럼 나 자신을 위하여 살아온 날이 얼마나 될까 생각도 해 봅니다. 저는 지금 한글학교 학생으로 책가방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 너무 즐겁씀니다. 저녁에는 얘기책도 읽고 시장에 다닐 때도 맘 놓고 버스 행선지를 보고 탈 수 이씀니다. 학교에서 좋은 말씀도 듣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얘기도 나눌 수 있어 더욱 즐겁씀니다. 선생님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 주실 때면 답답하기만 했던 귀가 뚤리는 것 같아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께서 열성으로 가르쳐 주시고 경녀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제는 눈으로 모든 글자를 일글 수 있고 쓸 수 있어 마음까지 발가져 웃으며 살고 있씀니다.
숙제가 만은 날은 눈꺼풀을 비비면서도 그저 즐겁기만 함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식들까지 응원군으로 힘이 돼 주어 고마씀니다.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뭐 하느냐고 투정하고 불편하게 했다면 공부 시작도 못했을 텐데 그러지 안아 자식들이 그냥 고맙끼만 함니다.
늘그니가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선생님께서 한글도, 구구단도 가르쳐 주시고 은행에 가서 청구서 써서 돈 찾는 법도 가르쳐 주셔서 그저 고맙기만 함니다.
까막눈이었던 늘그니가 선생님 덕분에 한글 깨우쳐 광명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씀니다. 그 바람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어씀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할아범도 이런 내 모습을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즐거워할 것입니다. 선생님 고맙씀니다. 늘거서도 발근 눈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시어 정말 고맙씀니다.
2016년 7월 7일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진순 올림'
나는 요즈음 무학자 노인들이나 불우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하면서 후반전 인생을 뛰고 있다. 그들이 밝은 표정으로 삶에 애착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동분서주하는 삶으로로 숨 돌릴 겨를도 없지만 그렇게 즐겁고 기쁠 수가 없다. 학생 할머니들은 이제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상황' 에서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편지까지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은행창구에 가서 청구서를 써서 현금도 찾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할머니들은 표정이 밝아지고 삶에 활력소가 생겨 꿈과 희망으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물질로 얻을 수 없는 그 이상의 보람을 느끼며 기쁨과 환희로 살고 있다.
할머니들의 간식거리의 별난 싸움!
그것은 탐욕으로 무엇을 쟁취하려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과 사랑을 주고 싶어서 하는 아름다운 싸움이었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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