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을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간 생선국수집은 청산면사무소 앞에 있었다. 식당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소박했다. 얼핏보면 구멍가게처럼 보였다.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손님들이 꽤 들어찼다. 방으로 들어가 털썩 주저앉아 생선국수를 시켰다. 국물을 맛봤다. 국물이 사골을 곤 것처럼 진했다. 생선의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쫀득한 살이 씹혔다. 눈알도 몇 개나 먹었다. 생선을 많이 넣었다는 증거다. 보양식 한 그릇 먹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가족들과 예당호변에서 먹은 유명하다는 어죽은 게임이 안됐다. 사실 생선국수와 어죽은 국수를 넣느냐, 쌀을 넣느냐의 차이다. 근본은 다르지 않다. 사촌쯤 될까?
내가 어죽을 처음 먹어본 건 대학 4학년 교생실습을 할 때였다. 그때도 5월이었다. 교생실습은 시골 고향 면소재지에 있는 자그마한 중학교에서 했다. 교생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모든 게 서툴고 하루하루가 고됐다. 점심은 여교사들과 함께 먹었다. 학교 근처 가정집에서 여교사들을 상대로 점심 장사만 하는 곳이었다. 첫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게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여교사들은 밥을 두 공기씩나 먹는 게 아닌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알았다. 교사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배가 굉장히 고프다. 며칠 후부터 나도 공기밥 추가는 당연지사.
하루는 수업을 끝내고 교사들이 천렵을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승용차 몇 대를 나눠 타고 칠갑산으로 달렸다. 맑은 물이 흐르는 냇물에서 남자 교사들이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고기 잡는 솜씨를 보니 천렵을 종종 오는 모양이었다. 젊은 체육 교사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들통을 얹고 물고기와 쌀, 온갖 양념과 호박, 대파, 깻잎 등을 넣고 끓였다. 어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어죽이란 것이 영락없이 개죽처럼 보였다. 옴마, 우리집 쪼니가 먹는 밥이잖아? 이걸 먹는다고? 먹성 좋은 여교사들은 맛있다며 허벌나게 먹었다. 나도 망설이다 한 수저 입에 넣었다. 와! 이렇게 맛있을 수가. 대 반전이었다. 얼큰하고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났다. 나도 허벌나게 먹었다.
청산 생선국수집 주인 서금화 할머니에게 국수를 넣게 된 이유를 물어봤다. "국수가 먹기 좋고 훌훌 잘 넘어가니께." 이곳은 생선국수의 원조다. 1962년부터 시작했으니까 60년이 다 돼간다. 지금은 아들, 딸이 대를 이어 운영한다. 그날도 서 할머니는 부엌 한 켠에서 배추 겉절이를 버무리고 있었다. 일을 놓지 않아서 그런가. 90이 넘은 서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정정해 보였다. 옥천은 금강과 대청호를 끼고 있어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몇 년 전, 금강변을 따라 걸을 때 금강 휴게소에서 본 도리뱅뱅 파는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도리뱅뱅도 옥천이 원조인가? 식당을 나와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마을을 돌아봤다. 문득, 뜬금없이 옛 시가 떠올랐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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