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뿌리는 넘어지고 나서야 보여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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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뿌리는 넘어지고 나서야 보여지는 것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승인 2019-05-13 10:39
  • 신문게재 2019-05-14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권득용_2018
지난밤 봄비에 쓰러진 잣나무 멀대같이 제키만 키웠다// 바람이 슬쩍 지나가자/ 기울기를 측량하지 못하고 곤두박질한 지상// 뿌리는 넘어지고 나서야 보여지는 것// 나도 뿌리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오늘 아침 나무가 쓰러지고 난 뒤에야/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를 지탱해준 뿌리라는 것을 알았다 (졸시 '뿌리' 전문)

소소리 바람으로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통째로 뿌리가 뽑힌 잣나무 곁에는 찔레꽃 한 무리가 곱게 피어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하얀 찔레꽃은 마치 하현달이 인수분해 된 고향 언덕 풍경이었지요. 그리고 생채기로 넘어진 잣나무가 울컥 부모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나도 저 나무처럼 애써 뿌리를 보려 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던 게지요. 저렇게 몸짓을 키우는 동안에도 제 뿌리가 소중한 것을 왜 생각지도 못했는지 불효했던 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부모님께 잘해 드리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5월뿐이겠습니까만 부모님 살아 계실 적에는 무덤덤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어릴 적에는 말 잘 듣고 착한 아이였지만 성장하면서 부모님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는 이기적 독립체가 되어 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요즘 세태입니다.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하신 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공기나 물, 나무 같은 공공재(公共財)처럼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쯤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부모님들은 대처에 있는 자식들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지요. 그러한 부모님이 때로는 불편하고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아무 용건 없이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시는 그 사랑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적은 없으신지요.

5월은 가정과 사랑을 위해 만들어진 달입니다. 이제 그동안의 데면데면함은 잊으시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부모님에게 그냥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시면 어떨까요. 아무리 살기 팍팍한 세상이라도 효의 시작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고 보니 5월은 모든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가족들을 위한 행사로 힘들기도 합니다. 어버이날은 지나갔지만 우리집 또한 예외는 아니지요. 아직 결혼기념일과 지어미 생일까지 남았으니 출가한 딸아이와 대학생 아들 녀석은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준비한 선물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콧잔등이 찡해집니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고 해서 효의 개념까지도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소득이 늘면서 되래 행복의 크기가 줄어드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로 우리는 자식들의 처지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효문화 전통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큰 강물도 계곡의 작은 시냇물에서 출발하였듯이 이제는 효의 실천도 시대와 문명의 시류에 따라야겠지요. 그리하여 현대의 효(孝)는 "그동안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는 일"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는 5월입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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