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에서 삼성동 방면으로, 옛 대한통운 뒷편 골목길로 들어서면 ‘정동’이 나온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은 길, 그 길을 따라 좌우에는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오래된 건물들이 그림처럼 서 있다.
정동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이었다. 1930년대 철도가 운행되면서 마을은 성장했지만 윤락가와 노동자들이 쉬어가는 숙박업으로 사실상 최근까지도 우범지대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8년 47년 만에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이 해제되면서, 정동은 이제야 마을이라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천천히 정동 안으로 걸어가 봤다. 보은 여인숙, 빈집, 진도미용실, 손놀이 공방, 또 빈집, 그러다 스페이스 휴, 또바기, 손길, 정동상회. 마을 어귀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위축감은 괜한 걱정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듯 정동에는 문화의 꽃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마을은 여전히 정돈되지 못한 빈집이 넘쳐 슬럼가 이미지를 완벽히 벗지는 못했지만,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만나 이른바 '힙(hip,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하는 형용사)한' 동네가 되고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이색적인 전시물도 눈길을 끌었다. 굳이 신식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도 지금 모습 그대로가 충분히 매력적임을 보여줬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은 2017년부터 정동과 원동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술을 통해 마을을 변화시키는 마을 미술프로젝트로 최근 선정된 작가 4명을 더해 약 20명 정도가 정동에서 작업 중이다.
이장민 대전공공미술연구원 예술감독은 “미술을 통해 자원의 재생, 공간의 재생, 삶의 재생을 목표로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라며 정동 곳곳을 소개해줬다.
하지만 정동을 바꿔보겠다는 작가들을 의지를 주민들이 처음부터 반겼던 건 아니다. 무관심과 윽박지르기는 물론이고 여기서 뭘 하겠느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2017년부터 정동에서 작업 중인 김윤정 작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호감을 갖고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매일 얼굴을 보며 인사를 했다. 함께 초나 비누를 만들었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서히 마음을 연 주민들은 이제는 작가들과 한 식구가 됐다.
최영옥 정동통장(정동슈퍼)은 “작가들이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야 여기 그냥 사는 사람들이니까 좋은지 싫은지 몰랐다. 작가들이 온 뒤로는 동네가 북적북적하고 문화도시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작가들과 정동 주민들과 가방부터 비누, 수세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재료비를 제외한 판매 수익금은 주민들 공동 통장으로 입금되는 구조다.
정동이 변하자 시와 지자체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 주거환경지원 개조사업 일환으로 4년간 50억 원의 지원을 받게 됐다. 정동을 방문했던 날, 페인트를 칠하고 비를 막아주는 지붕을 설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황혜진 대전공공미술연구원 대표는 각각의 사연을 품고 있는 정동이 관광지보다는 살고 있는 주민들이 문화를 경험하고 소비하는 동네가 되길 원하는 마음이 크다.
황 대표는 “정동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여전히 우범지대라는 인식이 큰데, 안전한 곳, 사람들이 유입되는 곳, 문화가 만들어지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정동은 문화를 즐기고 창조하는 동네가 됐다. 다만,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작가들도 지역주민들도 공통된 마음이다. 과거와 현재가 있고 문화가 있어 정동은 오늘도 계속 꿈을 꾼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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