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 |
이처럼 매 년 두 번 슈퍼컴퓨터 톱500 순위를 매기는 전통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3년에 시작되었다. 미국 테네시 주립대학의 잭 동가라(Jack Dongara) 교수가 개발한 선형대수를 처리하는 린팩 성능시험을 통해 나온 컴퓨터의 실수연산 능력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한다.
공식적인 톱500 순위가 나오기 전에도 슈퍼컴퓨터 현황을 알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맨하임 대학의 한스 모이어 교수는 당시에 학계와 산업계로부터 수집한 데이터에 근거해 슈퍼컴퓨터가 설치된 장소, 대수, 제조사 등에 대한 정보가 있는 소위 "맨하임 슈퍼컴퓨터 리스트"를 발표하였다. 초기의 맨하임 리스트는 당시 크레이, 후지쯔, CDC, NEC, 히타치 5개 제조사에서 제작하는 벡터시스템들의 단순한 목록이었다. 하지만 이들 제조사 뿐 만아니라 IBM 등 다른 업체에서도 만든 벡터시스템들과 대규모 병렬시스템들이 시장에 대거 등장함으로써 맨하임 슈퍼컴퓨터 리스트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졌다.
다양하고 좀 더 복잡해진 컴퓨팅 환경 변화 속에서 1990년대 초 한스 모이어 교수와 에리히 스트로마이어 박사는 당시 고성능컴퓨팅 시장을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슈퍼컴퓨터 리스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약 2년여 간의 다양한 조사와 연구 끝에 두 사람은 이론치가 아닌 실제 측정 성능 수치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최대 몇 대까지 순위를 매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1993년에 슈퍼컴퓨터 톱500이 탄생되었다. 최대 500대까지만 정한 이유는 1992년 맨하임 리스트에서 정한 당시 슈퍼컴퓨팅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숫자가 500대였기 때문이다. 순위 매기는 기준으로는 알고리듬이 비교적 단순할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 상위 500여대까지 별다른 누락 없이 실제 성능 측정치를 구할 수 있었던 린팩 벤치마크가 채택되었다.
컴퓨터의 성능이 기가(10의 9승)에서 테라(10의 12승), 그리고 페타(10의 15승)의 시대를 거치는 지난 25년 동안 슈퍼컴퓨터 톱500 순위는 여전히 린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향후 1~2년 안에 페타의 천배인 엑사급 슈퍼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 미국, 중국, 일본의 슈퍼컴퓨팅 경쟁이 치열하다. 다가오는 엑사 시대에는 톱500 성능 순위를 매기는 역사와 전통에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상위 500대까지만 순위 매김을 할까? 린팩이 아닌 다른 방법이 채택될까?
사실, 1993년 도입된 이래로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린팩 성능 측정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슈퍼컴퓨터의 실제 응용 성능을 더 잘 나타내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안되었고 지금도 린팩 성능과 병행해서 슈퍼컴퓨터 또 다른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들로써 사용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톱500 순위는 린팩 성능치 기반이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컴퓨터 순위 10 또는 50대가 아닌 500대라는 숫자를 유지하는 한 지난 25년간 그래왔듯이 린팩 벤치마크의 단순성과 확장성, 그리고 이기종의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에 쉽게 최적화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린팩에 근거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 순위를 정하는 '슈퍼컴퓨터 톱500' 역사와 전통은 앞으로도 한 동안은 이어질 것 같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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