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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돈 벌러 나간 지아비는 소식이 없고 배고픈 아이는 자꾸 보챈다. 투정부리는 아이를 때리며 여인도 서럽게 울었다. 결국 아이는 죽어 저 세상으로 갔다. 초라한 돌무덤이 아이의 흔적으로 남았다. 인적없는 산 비탈에 피는 도라지꽃. 아이가 좋아하던 꽃. 산꿩도 서럽게 울었다. 기약없는 지아비와 돌무덤으로 남은 여인은 속세를 떠나 여승이 되었다. 씁쓰레한 가지취 냄새나는 여승을 보는 시인의 마음도 미어진다.
모던보이 백석의 시는 슬픔의 정서가 배어 있다. 식민지 하의 나라잃은 부초의 서러움인가,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인가. 가난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다. 그 가난은 대물림된다.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람들의 지난한 가족사를 기록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봐도 끝없이 추락하는 곤궁한 삶. 길 가에 피어있는 제비꽃처럼, 민들레꽃처럼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서럽고 서러운 민초들은 오늘도 살아간다. 시인 백석의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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