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된다.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우리의 이상은 남을 위하고, 남을 살리는 일을 낙으로 삼는 것이다. 무집착과 자비의 마음으로 행하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
가사 장삼 한 벌을 걸망에 지고 다음 수행처를 찾아 떠나면서 행동으로 무소유의 삶을 보여주는 스님들이 부럽다. 그들은 견물생심으로 좋아 보이는 것마다 갖고 싶지만 막상 가지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으로 어우러지는 한때의 감정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의 어려움도 지나가는 한때의 현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을 극복하는 정신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일이란 나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렵도록 고통스런 일도 지내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위기관리 능력이 아니겠는가? 위기관리 능력은 자신의 됨됨이이며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세상일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요셉이란 인물은 종살이, 옥살이 등 뼈를 깎는 고난의 세월을 거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다. 인동초와 같이 기다리다 보면 자신의 경륜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다. 우리는 비교의 구조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 논리에 마치 무슨 환자처럼 중독돼 있다.
꽃이 어디서나 아름다운 이유는 순간순간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미래만을 내다보는 것도 좋지 않다. 현재를 살펴 오늘에 충실하는 것이 내 삶을 살찌우는 일이다. 고통을 잘 이겨낸 사람의 얼굴에는 막 세수를 하고 난 사람의 모습처럼 그 표정엔 맑은 고요가 가라앉아 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거친 모래만 날리는 사막에 어린 풀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 풀들은 사막을 날아다니는 생명이었다. 새처럼 마른 풀로 날아다니다가 어쩌다 일 년에 한 번 잠깐 비를 만나면 그 사이에 얼른 땅에다 뿌리를 내려 종족을 번식시키며 사막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풀들이었다. 사막에서 고통을 견디고 결핍을 함께 이겨내는 겸허한 절제야말로 진정한 양수기가 된다.
인간이 한 번의 생을 살면서 남기는 흔적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번뇌와 욕심으로 각인된 발자국은 결코 뒷사람이 따르거나 배울 것이 못 된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에 의해서 미래의 모습은 결정된다.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걸어갔다는 점에서 어떤 위인전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호수는 일종의 거울처럼 옆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담는다. 물론 나무가 걸어들어와 물속에 누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호수는 나무를 반사할 수 있는 성품 또는 나무의 형상을 자체 내에 갖고 있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사랑, 양심을 물질에 팔지 않는 자유, 거짓을 말하지 않는 용기,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성실함,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성숙함, 잘난 체하지 않는 겸손, 잘못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떳떳함 등을 가진 사람의 인품은 고매 그 자체다.
그들의 고매한 정신은 후세에까지 영원히 살아서 인류와 함께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누리는 기쁨이 한 보따리 넘지 않게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삶은 추앙받는다. 지금도 가끔 남을 살리기 위한 죽음과 남을 죽이기 위한 삶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음이 안타깝다.
문희봉 /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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