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우리 친구들의 뜻 깊은 환갑여행을 인지하지 싶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윽고 인천에 도착했다. 항구 도시 특유의 이런저런 배들과 갈매기들이 화려한 날갯짓으로 우리들을 반겼다. 먼저 월미공원을 찾았다.
한국전통정원의 고풍스런 한옥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전통의상체험을 하고자 한복으로 갈아입은 여자동창들의 모습은 과거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안방마님으로 보여 웃음을 유발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700만 동포들의 애환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인천상륙작전표지석(그린비치) 앞.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은 1950년 9월 15일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하여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군사작전을 말한다.
6·25전쟁이 일어난 후 조선인민군은 남진을 계속하다 국제연합군의 참전으로 낙동강에서 교착상태를 맞게 된다. 이에 국제연합군은 조선인민군의 허리를 절단하여 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워 첫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되었다.
제1단계로 9월 15일 오전 6시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 2단계로는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마지막 제3단계로 한국 해병 2개 대대, 미국 제1해병사단은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고 20일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27일 정오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인천상륙작전은 1/5000의 성공확률이었기에 세계전쟁사에 남을 기록으로도 손꼽힌다. 조선은 힘이 없어 일제에 나라를 빼았겼다. 해방이 되긴 했지만 외세의 의한 것이었기에 남북이 갈라졌다.
적화통일을 노린 김일성은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구걸하여 6.25한국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 만에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한다. 이어 거침없는 기세로 낙동강 유역까지 점령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국군과 유엔군이 수세에서 벗어나 대반격을 시작하고 전세를 역전시켜 전쟁을 마무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천상륙작전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지난 3월 19일 미주 한국일보는 인천상륙작전의 지도를 담은 문서가 공개되었다고 보도했다. 내용을 잠시 살펴본다. =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을 꼭 한 달 남겨두고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지시로 제작된 인천과 서울의 지형을 상세히 기록하고 분석한 기밀 문서 원본이 뉴욕에서 공개됐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김태진 국제지도수집가협회 한국 대표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국제고서전에서 인천상륙 작전을 위해 제작된 약 40쪽 분량의 인천과 서울의 지형과 항공기 착륙 가능 지점, 교통편 등이 상세히 수록된 자료집을 발견해 입수했다"며 "현재 한국에는 없는 문서로 그 존재가 한국에 알려지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가 본보에 공개한 자료집에 따르면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명령으로 제작됐으며 사령관 등 수뇌부 53명에게만 지급된 기밀문서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이번 자료집이 제작된 지 일주일 뒤인 8월23일 열린 극동사령부 긴급회의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최종 승인됐다.
자료집에는 작전 수행을 위한 필수 정보인 인천의 상륙 가능지점과 밀물시 상륙 가능 지점과 썰물 때의 해안선 변화 등이 상세히 수록된 지도와 항공 사진 10여점이 수록됐다. 항공 사진은 1950년 7월 촬영된 것으로 표기됐다. 또 인천에서 서울까지의 이동 방법과 도로와 철도 등의 정보 등이 수록된 지도, 서울 중심가가 촬영된 항공사진, 당시 비행장이 있었던 여의도를 촬영한 항공사진 등이 수록됐다.
김 대표는 "인천상륙작전 결행을 위해 맥아더 장군과 극동사령부가 한국전쟁 개전 초기 때부터 매우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서한서 기자>" =
조선일보는 4월 29일자에서 [남쪽만의 4·27… 북한 "南 자숙하라" 오히려 비난]을 통해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가 북한의 참여 없이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아울러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외면' 속에 한·미·일 3각 협력은 물론 한·미 동맹도 난기류에 빠진 상황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사견이지만 왜 우리의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보다 어린 김정은에게 꼼짝을 못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동창들과 함께 한 '인천상륙작전'은 국력이 약하면 또 다시 당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새삼 곱씹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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