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돈키호테와 오유선생 (烏有先生), 그리고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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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돈키호테와 오유선생 (烏有先生), 그리고 김삿갓

김용복/ 극작가

  • 승인 2019-05-02 16:5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돈키호테는 1605년에 간행된 세르반테스의 장편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에스파냐의 시골 향사 '아론소 기하노'는 자기 스스로 중세기의 편력(遍歷) 기사가 되어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도려내고 학대당하는 사람들을 돕고자 '돈키호테 데라만차'라고 자칭하고, 갑옷을 입고 로시난테라는 말라 빠진 앙상한 말을 타고 편력의 길에 오른다. 그는 근처에 사는 농부 산초 판자를 종으로 거느린다. 현실과 동떨어진 고매한 이상주의자인 돈키호테는 충실한 종자 산초 판자와는 지극히 대조적인 인물이다. 그의 기사도 정신의 광기와 몽상은 이 두 사람이 가는 곳마다 현실세계와 충돌하여, 우스꽝스러우나 주인공들에게는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게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책 읽다가 가상의 세계에 빠져서 세상을 자신의 상상으로 여행하면서 다른 이들과 다른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돈키호테'라는 말은 소설의 주인공 돈키호테에 빗대어 현실을 무시한 공상적 이상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또한 그런 인물의 유형을 돈키호테형이라고 부르며, 반대되는 유형을 햄릿형이라고 부른다

오유선생 (烏有先生)은 사마상여 (司馬相如)가 지은 <한서漢書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도 돈키호테처럼 가상 인물이다. '오유선생'이라는 명칭은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쉽게 말하면 선생 나으리, 어째 이런 일을 하고 계십니까?로 풀이 할 수 있다.<한서사마상여전漢書司馬相如傳>



얽힌 유래를 보자.

까마귀는 온통 검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다들 '왜 그럴까'를 연발했다. 결국 글자도 鳥(새 조)에서 점(`·눈을 뜻함)이 하나 빠진 '오(烏)'자로 만들었다. 곧 오(烏)의 본디 뜻은 '까마귀'지만 '검다' 는 뜻도 있으며, '왜' '어찌' 라는 강(强)한 의문(疑問)의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오유(烏有)'는 '어찌 있을 수 있으랴'가 되며, 오유선생(烏有先生)은 '상식적(常識的)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오유(烏有)!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라. 오유(烏有)인 것이다.

김삿갓은 그의 할아버지를 조롱하는 시를 써서 장원급제한 실존인물이다. 생각해보자. 그가 왜 방랑시인이며,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시를 남긴 인물인가?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병연(炳淵)이요, 삿갓을 쓰고 다녔다해서 흔히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부른다. 그의 할아버지는 익순(益淳)이요, 그의 아버지는 안근(安根)이다. 그는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문제였다.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그가 다섯 살 때 평안도 선천부사로 나가 있었다. 그런데 1811년 평안도 일대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농민군들은 가산 · 박천 · 선천을 차례로 함락시켰는데, 가산군수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거역하다가 칼을 맞아 죽었고, 선천부사 김익순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리고 농민군에게 항복해 직함을 받기도 하고, 또 농민군의 참모 김창시를 잡았을 때 그 목을 1천 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려는 짓거리를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김익순은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했다. 정시는 만고의 충신이 되었고, 반대로 김익순은 비열한 인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김삿갓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고을에서 보는 향시에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시제가 그 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나올 줄이야.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는 것을 탄식한다."

어렸을 때 일이라 할아버지의 잘못을 몰랐던 그는 답을 신나게 써 내려갔다. 그중 마지막 몇 구절만 보면 이렇다.

"임금을 잃은 이 날 또 어버이를 잃었으니/한 번만의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춘추필법을 네 아느냐 모르느냐/이 일을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

할아버지의 모반죄를 우리 역사에 길이 남긴다고 썼다. 그래서 그는 장원급제를 했고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김삿갓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한 일을 더 감출 수가 없었다. 어머니 말을 들은 김삿갓의 심정은 필자가 논하지 않겠다. 필자도 괴롭기 때문이다. 그는 스물두 살 때 장가를 들고 아들까지도 낳았는데 마음을 잡지 못해 방랑의 길로 떠나게 됐던 것이다.

자, 마무리 해보자.

돈키호테나 오유선생은 가상의 인물인 동시에 외국인들이다. 그러나 김삿갓은 실존인물이며 우리나라 사람이다. 두 사람은 어지러운 세상을 풍자하며 바로 잡아보려고 노력했던 인물들이고 김삿갓은 풍자와 해학을 일삼으며 떠돌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 풍자와 해학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중도 도인도 아닌 탈속의 달인, 이것은 그의 행동과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세 부류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천방지축 오유선생 노릇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이를 바로잡고자 돈키호테처럼 나서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김삿갓처럼 풍류나 읊으며 산 찾아 물 찾아 떠도는 풍류객들도 많다. 누구 때문인가? 오유선생 때문이다.

김용복/ 극작가

김용복 칼럼니스트-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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