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지금 생각해도 소름돋는 아찔한 기억이 있다. 2011년, 당시 나는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호흡기가 좋지 않았던 나를 위해 남편은 밤마다 가습기를 틀어주었고, 살균제를 넣기도 했다. 하지만 가습기를 틀고 잔 날은 이상하게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에 잠을 잘 자지 못했고 결국 나는 남편에게 가습기를 틀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후 며칠 후 나의 눈을 의심케 하는 뉴스가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에서 독성 물질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 화면에 비춰진 제품은 우리 집에서도 사용했던 옥시에서 나온 바로 그 제품이었다.
당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특히 영유아와 임산부의 피해가 컸다. 호흡기가 약한 임산부나 아이를 위해 남편이, 혹은 엄마가 직접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해 넣었다고 한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를 철썩같이 믿고 말이다.
가습기살균제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동시에 잃은 남편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아내와 아이를 죽게 했다며 오열했다. 영문도 모른채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숨통을 끊었다며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다행스럽게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을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아이와 노인 등 피해자는 너무나 많았다. 그 후 정부는 해당 제품들의 사용을 전면금지했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잠재적 피해자가 생겨났는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2019년 현재까지도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도 살균제 피해 신고를 했으나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40대 남성이 폐섬유화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2012년 같은 증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로, 모자가 모두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남성의 죽음으로 정부에 신고된 살균제 사망자 수는1402명에서 1403명으로 늘었다.
얼마전 100일이 안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지인이 '어떤 젖병 세정제를 썼느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썼던 '에티튜드'를 추천해 주었다. 동생은 자기도 그 제품을 쓰고 있었는데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검출됐다며 속상해했다.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 황당했다. 해당 제품은 친환경으로 알려지며 엄마들 사이에서는 '국민 세정제' 수준으로 유명했으며 가격도 일반 제품보다는 비쌌다. 내 아이를 위해 좀 더 좋은 제품을 고르고자 선택했지만 이번에도 속은 것이다.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도대체 안전한 제품이 있기는 한거냐"며 불안해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제 화학 제품들은 우리 삶에서 뗄 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 화학제품들을 마냥 안심하고 써도 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제품을 계속 썼더라면….'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다.
서혜영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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