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한 게티즈버그 연설도, "노예제 찬반으로 분열된 나라를 그대로 두고 번영을 이룰 수 없다"며 단결을 호소한 '분열된 집(House Divided)' 연설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1860년, 유력지 시카고 트리뷴은 링컨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며 그 이유를 이렇게 썼다. '그는 음모를 꾸미거나 정치적인 야합을 할 사람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공직자 후보란 얘기였다. 말을 잘해서 받은 평가가 아니었다.
그는 냉철한 변론으로 유명했지만 돈 계산에선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처신으로 더 유명했다. 링컨 덕분에 농장이 은행에 넘어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한 의뢰인이 50달러를 내놓았다.
링컨은 "10달러면 되겠소"라며 40달러를 돌려줬다. 수임료를 먼저 받은 사건은 검토해보고 승산이 없으면 돈을 전액 돌려줬다. 이익 앞에서 그는 계산에 둔한 바보가 되는 쪽을 택했다. '뱀처럼 영리한데도 비둘기처럼 무해한' 변호사란 명성이 전국에 퍼졌다. 그 명성이 무명의 시골뜨기 변호사를 단숨에 백악관 주인으로 밀어올렸다." -
4월 13일자 조선일보 [터치! 코리아 이익 앞에선 의로움 저버리는 공직자 후보들]을 쓴 김태훈 논설위원의 글이다. 여당의 사실상 우군인 정의당이 당초 내놓았던 이른바 '데스노트'를 슬쩍 집어넣으면서 이미선 후보자가 기어코 헌법재판관 자리에 등용되었다.
그로서는 남편의 적극적 방어와 여권의 '내로남불' 현상에 편승하여 요직 중 요직에 올랐으니 평생의 소원을 푼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감정은 어수선하며 당장 자유한국당은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고 고강도 대여투쟁을 시작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이익 앞에선 의로움 저버리는 공직자 후보들' 기사에서 기자도 지적했듯 사람을 판단할 때는 말보다 행동을 보는 게 세상의 이치다. 헌법재판관이 되겠다는 현직 판사가 자신이 맡은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 주식에 거액을 투자했고, 그 배우자는 주가에 영향을 주는 주요 공시를 전후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팔아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샀기에 이미선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큰 홍역을 치렀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다시 마치 우격다짐과도 같은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정말이지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음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삼척동자가 봐도 결함이 뻔한 후보자가 고위직에 임명이 되고, 세간의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선 전횡(專橫)의 그림자까지 어른거렸다.
이러한 모습은 4월 22일자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에서 다룬 [비주류 편향 인사로 '3류 천국' 만들 건가]라는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박제균 논설주간은 "바늘방석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말이다"라고 시작하면서 "조명균 전 장관마저 떠났으니 통일부도 휘청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외교안보와 남북관계에선 인사권자에게 시쳇말로 무조건 '시시까까(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고)'해선 안 된다."라며 비판했다. '내로남불'에 이은 또 하나의 신판 사자성어인 셈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명예와 재물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얼 선택할 것인가? 재물은 닳아 없어지지만 명예는 사후에도 영원히 빛나는 보석이 된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
그는 명문세가(名門世家)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과 선각자적인 안목이 뛰어났다. 그의 가문은 역대 선조들이 계속 높은 벼슬을 한 조선조의 명문가였다.
아버지는 이조(吏曹)판서를 지냈을 뿐 아니라 그의 10대조는 임진왜란 이래 다섯 번의 병조판서, 세 번의 좌·우정승과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이다. 백사 이래 이유승(李裕承)에 이르기까지 9대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승,판서,참판을 지낸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1910년에 국치(國恥)를 당하자 거대한 재산을 헐값에 급히 처분하고 50여 가족이 모두 만주로 가 항일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고종이 선생에게 벼슬까지 내렸지만 강직했던 선생은 벼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했던 나폴레옹의 명언이 새삼스럽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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