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이사장 |
인간의 한자에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 자가 쓰이는데, 풀이하면 '사람의 사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표현하는 데는 사람 人자 한 글자로도 이미 충분한데, 굳이 間 자를 붙여 인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의 사이'라 표현된 人間은 '혼자 있을 때의 사람(人)'과 분명히 다른 특징이 존재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변 사람과의 관계로 형성되는 인간으로 생활하게 된다.
이와 같은 관계 형성은 대부분의 동물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일례로 뻐꾸기는 오목눈이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데, 오목눈이 알들보다 일찍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오목눈이 알을 죄다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오목눈이의 새끼인 양 먹이를 독차지하는 등 가짜 모자 관계를 형성한다. 이처럼 동물들 사이의 관계는 생존을 위한 경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고, 정서적인 것에 영향을 더 받는다. 아이는 태어나 처음 만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 자매 등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서로 교감하면서 자란다.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은 평생에 걸쳐 주변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화목한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는 후에 너그러운 아내, 자상한 남편, 좋은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부인에게 폭언하고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 중에는 안타깝지만, 그토록 경멸하던 아버지가 하던 짓을 결혼해 자기 아내에게 똑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 또래나 친척,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 친구들과 교류하며 형성된다. 특히, 사회화 형성 시기인 유·초년 시절의 경험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므로 중요하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유치원과 학교에서도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쾌한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세심히 배려하고 교육해야 한다.
부모는 가정에서 하는 행동을 아이가 따라 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언사에 조심해야 한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습관을 길러주며,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가르쳐야 한다. 유·초등 교육기관에서는 영어 말하기보다도 더 중요하게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 형성'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성과 사회화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회 전체의 건전성 향상과 사회적 비용 감소로 이어져 효과가 매우 높을 것이라 예상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가상세계가 강요하는 전혀 새로운 상대와의 관계설정 문제다. 만약 모처럼 예쁘게 꾸민 거실의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누군가가 ‘막돼먹은’ 댓글로 상처를 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SNS상에서 설전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속은 쓰리지만, 그냥 참고 말 것인가?
초연결 시대를 맞아 가상세계 속 익명들과의 관계가 현실 인간 사이보다 더 중요해질 때도 있다. 수십 년간 다양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해 왔는데, 가상공간 속에서는 일순간 전혀 다른 인격체로 변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가상공간에서의 가당치도 않은 비난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 자신도 익명이라는 그늘에 숨어 악성 댓글을 날릴 수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상과 현실 세계의 연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므로 피하지 말고 적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가상공간에서의 소통방식에 대한 규칙과 절차를 보다 정교하게 마련하고, 네티즌들은 올바른 소통예절을 전파해 사람이 사이버 人間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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