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새옹지마(塞翁之馬)-진도 문화탐방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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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새옹지마(塞翁之馬)-진도 문화탐방 기행문

이완순 소설가

  • 승인 2019-04-2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진도대교
진도대교 모습/진도군청 제공
인생은 누구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한 순간에 거지가 될 수 있고, 거지가 하루아침에 부호가 되는 경우도 있다. 진도문학기행도 여행사의 실수로 처음엔 기분이 몹시 꺼뭇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이 술술 풀려 참으로 좋았다. 유머가 풍부한 문화해설사의 안내와 진도문인협회 회장님의 배려로 잘 선정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도는 여기저기 볼거리가 풍부했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 소치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선지 출중한 화가의 훌륭한 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이 꽤 많았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박약하고 소질이 없어서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는 참여도 잘하지 않았는데 운림산방, 남도전통미술관, 소전미술관, 장전미술관을 둘러보고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채색위주의 화려한 서양화와 달리 산, 강, 물안개를 붓으로 그린 단조로운 그림이지만 바라볼수록 깊은 이미지를 전달하는 울림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와 비슷한 이미지가 내재된 그림도 있었다. 미술은 형태를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근개념과 형상이 제대로 살아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박하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어 보이며 여백이 많았다. 단순히 미적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치중하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철학사상에 바탕을 두어 자연에 접근하고 묘사하기 때문에 오래 볼수록 그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세한도도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름을 알게 된다."는 논어사상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장전미술관에 걸린 소전의 사진을 빼고는 만족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왜 굳이 일본식 복장을 한 사진을 우리 민족의 자랑인 남화전시관에, 그것도 입구에 전시했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친일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며 그냥 걷어차고 싶도록 울컥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이름은 그냥 지어지는 게 아닌가보다. 돌고 돌수록 진도는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 보배섬이란 이름이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승전사로 추앙받는 명량대첩 기념지와 우리 민족의 애국심이 강렬함을 상징하는 용장성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불과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을 무찌른 명량대첩지인 울돌목 다리, 진도대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기대심이 부풀어 가슴이 벌렁거렸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적선과 대적해 일본군 장수 구루시마의 목을 베어 사기를 꺾으면서 일본 병선 31척을 침몰시킨 명량대첩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우리 한겨레의 자랑이다. 빡빡한 일정상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진도타워와 승전광장을 오래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저항정신의 상징인 용장성에서 마음을 달랬다.

우리 민족은 단 한 번도 적에게 비굴하게 군 적이 없다. 수백 번의 외세침략이 있었지만 친일매국노 이완용을 비롯한 경술국치오적이 일제에 국권을 넘기는 일만 없었다면 우리 민족이 오랑캐의 식민 지배를 받는 수모를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제와 끝까지 싸워 결국은 우리의 힘으로 그들을 내치고 굳건히 일어섰을 것이다. 오랑캐가 쳐들어올 때마다 지배집단은 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곧 바로 꼬리를 내리고 외세에 알랑댔지만 우리 백성들은 항상 목숨을 내걸고 격렬히 저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용장성에서 치른 삼별초 항전이 아닌가?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영역을 넓힌 몽골군에게도 우리 백성은 절대로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삼별초가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여몽연합군에게 항전했던 유적지이며 배중손 장군이 전사한 곳인 남도진성을 둘러보면서 한민족의 후예임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이 작은 성에서 어떻게 원나라와 대적할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자긍심이 솟고 우리 조상들의 위대함에 감격했다. 원종 11년(1270년) 고려가 원나라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강행하자 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의 결의를 다짐한 삼별초군이 새로운 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호국의 성지, 사적지 제 126호인 용장성에서 독립지사의 아들이 이대로 살아도 되겠는가, 하는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도둑질하는 것을 보고 그냥 모른 체하는 것은 도둑놈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나라경제를 토탄에 빠지게 하고 대선에서 가장 우선 공약이었던 고위공직자 인사배제 5가지 원칙도 지키지 않으며 캠코더 인사로 국가의 운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 때 박근혜 편을 들고 촛불항쟁을 비난하던 무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얼마나 무지한 집단이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기 위한 공군 1호기에 태극기 하나 바로 꽂지 못한단 말인가?

여행은 이런 것이다. 아름답고 좋은 것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찰하는 기회이다. 진돗개의 우수혈통을 보존하고 세계적인 명견으로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진도개 테마파크에서 진도개의 묘기를 보고, 진도개 경주 배팅에도 참여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 동료 다수는 배팅에 성공해 진도의 명품, 진도홍주를 선물로 받았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얻지 못했다.

삶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보며 새로운 나를 찾아야한다. 이번 진도 탐방은 꽤 유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민족이라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고, 권력이 두려워 방관하는 것보다 더 파렴치한 행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버트 아인슈타인이 말씀한 것처럼 세상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악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파괴될 것이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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