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의 몽유도원도 |
아틀란티스 전설부터 수많은 현자들이 이상세계를 동경했다. 현자뿐이 아니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 않는가?. 그것이 참다운 이상세계일 수도, 현실에 대한 불만, 풍자, 도피처일 수도 있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도연명(陶淵明, 365 ~ 427, 중국 시인)이 도화원기를 썼다. 꽤 긴 내용이다. 현실 세계와 다른 점은, 거기에 사는 사람 모두 기쁘게 웃으며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기쁨, 즐거움, 이것이 이상세계는 아닐까?
복사꽃 하면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떠 오른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 ~ 1453, 세종의 삼자)이 도원경을 거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안견에게 그리게 한 것이며, 직접 발문을 썼다. 워낙 명작이다 보니 하나로도 가히 견줄바가 없다. 안견은 산수, 묵죽, 장송, 노안도 등 못 그리는 그림이 없다고 전한다. 특히 산수화에 능했다. 미술사학자 안휘준(安輝濬, 1940년 ~ )은 조선 초기 산수화풍을 안견파라 지칭할 정도로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문제는 전하는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십여 작품을 그의 작품으로 운운하지만, 안견의 작품으로 확증된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작품뿐이 아니다. 생몰에서부터 기록이 거의 전하지 않는다. 활동 시기만 세종대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몽유도원도에 당대 최고의 문인 21명이 찬을 썼다. 따라서 회화사뿐이 아니다. 우리 문학사와 서예사에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이 하나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교유하고 있었으며 사랑받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회화에서 삼차원을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평면에서 입체감,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물 표현으로 보면 입체감이지만 크게 보면 공간 표현이다. 원근법이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산수화의 원근법을 평행원근법平行遠近法이라 한다. 시점이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평행하여 간다. 지나가며 바라본 것처럼 처리한다. 사진기술의 파노라마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사진기술의 파노라마는 시폭을 확대한 것이 된다. 길게 촬영하지만, 초점이 하나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또 하나는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 이다. 앞과 뒤에 있는 사물 사이에 공기가 가득 있는 것으로 처리하여 원근감을 표현한다. 빛의 산란에 의해 실제 그렇게 보인다. 공간에 무한한 빛이 들어있다. 빛에 의한 색채와 명암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거리감이 나타난다. 멀리 있으면 흐리게 보이거나 푸르게 보인다, 윤곽은 뚜렷해지나 세부는 흐리게 보이는 것 등이 그에 해당한다.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지만, 대기원근법(大氣遠近法)이라고도 하는 이 용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사용했다 한다.
선 원근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소위 호선형 구도라고 하는 것이 그에 해당한다. 강이 휘돌아 나가는 것을 묘사하면 자연적으로 원근이 표현된다. 인상파(印象派) 화가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눈높이에 따라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으로 부른다. 시각의 각도에 따른 것이다. 삼원법이라 한다. 올려다본 것, 내려다본 것, 대상과 눈높이가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원근법을 늘어놓은 이유는, 이 모두가 몽유도원도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좌로부터 우로 가면서 상하 초점이 바뀐다. 올려다보다, 눈높이를 같게 하다, 그러다 내려다본다. 속세에서 험준한 산악을 지나 도원에 이른다. 이상세계를 소상히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측에 엄청난 도원경이 펼쳐져 있다. 공기원근법과 선 원근법이 함께 사용되어 넓이와 깊이를 더 한다.
가로쓰기하면, 보통 우측에서 시작하여 좌측에서 끝맺는다.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꿈속 유랑을 시작한다. 험준한 산을 지나니 환상의 세계가 나타난다. 몽유도원도는 좌에서 시작하여 우에서 끝낸다. 당시로써는 그도 특이한 것이다.
그림을 그려보면 작은 화폭에 그리기가 더 어렵다. 왼쪽의 속세를 지나면, 산이 모두 몽환적이다. 자연의 산 모양이 아니다. 어찌 작은 화폭에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까?
미술을 공부하다 보면, 감탄사가 나오는 명작들은 대부분 외국에 있음에 놀란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무엇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부끄러운 후손이다. 꿈을 그리는 것은 창조력을 키우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마음껏 꿈도 키우고, 그 꿈을 신바람 나게 그려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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