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유치원 삶 속에서 배움에 동행하는 교사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유치원 삶 속에서 배움에 동행하는 교사

이순덕 다빛유치원 교사

  • 승인 2019-04-25 10:32
  • 신문게재 2019-04-26 22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이순덕 교사
이순덕 교사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쨍쨍한 날이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바깥놀이 가자고 조른다. 유치원 놀이터는 마치 거인의 정원처럼 아이들로 인해 생기를 되찾는다. 자유를 넘어선 해방감이 묻어나는 아이들의 표정, 친구를 부르며 흔드는 손, 함께 놀자 건네는 마음, 해를 닮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교사인 나는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처음 나는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임용 준비하면서 배운 유치원교육과정은 참 아름답고 자랑스럽기 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난 나는 걱정이 많은 교사였다. 꼭 해야 할 것을 놓칠까봐, 아이들이 다칠까봐, 학부모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까봐, 무엇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두려워 여러 가정들을 생각하느라 상호작용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내 수업은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았고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이에요?'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로보곤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었기에 새벽까지 수업을 준비 하고 생활지도를 연구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나아져갔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아이들이 내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 덕분이었음을 느낀다. 부족한 내게 "선생님 사랑해요", "예뻐요", "재미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나는 엄마보다 선생님이 더 좋아요" 하는 아이들의 칭찬들이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용기를 되찾게 해주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듯 나 또한 아이들에게서 신뢰의 힘을 배우게 되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의 어려움은 그 아이 자신보다는 환경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한 아이가 가진 어려움은 다른 많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교사는 문제를 조정하느라 에너지가 고갈되기도 한다. 내가 만난 아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 손에 자라고 있었고, 가슴속에 화가 있는 듯 이유 없이 친구들을 때리거나 형들에게 조차 욕을 하는 아이였다. 조부모는 그런 아이가 버거웠고 안쓰러운 마음에 훈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고 그것은 다른 아이들의 불편함이 되었으며 급기야 그 아이와 놀이하지 않으려 했다. 같은 이야기도 한 두 번이지 나도 지쳐갈 때쯤 그 아이의 불편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야! 친구를 힘들게 하는 너도 지금 힘들구나! 많이 힘들어?"



그동안 눈물 한번 보이지 않던 아이는 조용히 울었고 나는 그 아이의 아픔을 이해해주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이 미안했다. 그동안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했지만 대부분 아이가 감정적으로 편안한 때였다. 사랑은 아이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 더 필요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후 나의 교사상은'아이를 잘 이해하고 동행하는 교사'로 바뀌었다. '이해하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더욱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사랑을 바탕으로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아이의 삶과 배움의 현장에 함께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특히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에겐 감정을 보듬어줄 보호자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의 세상은 순수하고 청명하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 아이들은 온몸으로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없으므로 말 그대로 처절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때 내 품은 아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 바란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은 "존경합니다"하고 인사하고 교사는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한다. 처음에는 존경합니다가 참 어려운 인사말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흔하게 사용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아이들도 '존경'이 뭐냐고 물었다. 존경은 '당신은 생각을 잘하는 참 멋진 어른이고 앞으로도 멋진 어른이 되어주세요' 라고 설명해주었다. 지금은 그 인사말이 나에게 배움을 준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존경에 걸맞게 통제보다는 자유로움 속 배움을,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도 그 아이의 선한 의도를 믿어주며, 아이들이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나의 사랑으로 함께 배우고 성장해가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