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시들기 전에 말리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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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들기 전에 말리는 꽃

  • 승인 2019-04-21 10:13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오래전 꽃 한 묶음을 선물 받았다. 하나로 묶인 하얀 장미 다섯 송이는 소복하고 예뻤다. 고운 선물이니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말리기로 결심했다.

꽃을 예쁘게 말리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아서 마르겠지 생각하고 방치하면 줄기는 꽃송이의 무게를 못 견뎌 뚝뚝 고개를 숙인다. 끝내 꽃송이를 떨어트리기도 한다. 알아서 잘 마르겠지 생각했던 꽃다발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곰팡이를 품고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꽃을 잘 말리는 법을 찾아봤다. 일단 시들기 전에 말릴 준비를 해야 한다. 활짝 피어버린 꽃은 마르면서 꽃잎이 떨어지기 쉽다. 어차피 마르는 동안 더 피기 때문에 살짝 덜 핀 꽃을 말려야 다 말랐을 때 모양이 예쁘다. 또 큰 잎은 제거해야 한다. 잎이 마르면서 꽃의 수분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꾸로 말리되 여러 꽃을 묶지 않고 한 송이씩 말려야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빛을 너무 많이 받으면 본래 색대로 마르기 어려우니 직사광선은 피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려야 한다.

꽃을 말리는데 필요한 지식은 노년을 향한 자세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꽃이다. 어느 뿌리에서 태어나 햇살 같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다. 다 크고 나면 누군가의 가슴에 안겨 웃음을 주기도 하고, 거대한 꽃밭 속 보이지도 않는 한 송이가 된 듯 낮아진 자존감에 웅크리는 날도 있다. '앵두나무, 살구꽃, 복숭아꽃, 배꽃이 비슷해 보이지만 피는 시기도, 열매도 다르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앵행도리(櫻杏桃梨)처럼 사람은 각각 활짝 필 때가 다르겠다. 한국인 평균 수명 82.7세에 맞춰보면 서른다섯살, 지금은 꽃잎 끝이 서서히 말라가는 무렵일까.



바로 세워 말리는 꽃이 곱게 마르지 못하는 건,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는데도 예전처럼 먹고 운동도 하지 않으면 악화되는 건강상태에 빗댈 수 있다. 습관대로 살면, 건강은 무거운 꽃송이를 매단 줄기처럼 아래로 아래로 고개를 숙일 것이다.

꽃을 살리려면 잎을 제거해야 하듯 욕심도 버려야 한다. 정말로 필요한 일과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고 욕심에 불과한 인연에는 마음을 비우는 편이 옳았다. 큰 잎을 떼어내는 건 아프지만 결국 더 아름다워지는 일이 될 것이다.

꽃에 통풍이 필요하듯,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 마음의 창문을 열어야 한다. 알던 것만 알고 있으려 하면 정신에 곰팡이가 핀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인생에는 무슨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알아봐야 한다. 오래된 추억도 환기시켜야 한다. 초심을 꾸준히 돌아보고 기억해야 한다. 빛나던 추억에 곰팡이가 피기 전에.

잘 마른 꽃처럼 나이들고 싶다. 나이 들어가는 모두가 그렇다면 세상도 더 아름다울 것 같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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