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나이 들며 많아지는 '비겁한 타협'에 대한 변명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박광기의 행복찾기] 나이 들며 많아지는 '비겁한 타협'에 대한 변명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4-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해, '민주주의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투쟁을 대화를 통해 타협하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거나 대립되는 상황은 흔히 갈등이나 투쟁의 상태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을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이 민주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타협'은 모두에게 공정하고 긍정적이며 모두에게 수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와 같은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화를 통한 '타협'의 과정에서 서로에게 양보와 관용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 양보와 관용이 없다면 애초부터 대화는 성립조차 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양보의 정도와 내용이며, 또한 어디까지 어느 정도까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인지도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갈등과 투쟁의 이해 당사자가 갖는 '타협'의 내용과 정도 또한 그 타협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수용할 수 있는 '타협'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이해 당사자에게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타협'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고, 그 '타협'으로 인해서 어쩌면 새로운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은 비단 어떤 갈등과 투쟁의 해결과정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집단적 이해의 대립이나 갈등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타협'은 집단적 이성과 관용 그리고 수용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런 '타협'과는 별개로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기준에서 무엇을 인지하고, 그 인지를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수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개인적 타협'이 내재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널목이 아닌 도로를 무단횡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없고 건널목이 멀리 있으며 내가 바쁘고 사고가 날 위험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도로를 무단횡단 함에 있어서, 내재적으로 스스로 '합리화'와 동시에 불법과 적법의 사이에서 적절한 내재적 '타협'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사고가 날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무단횡단을 하는 행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이와 같은 '내재적 타협'을 바로 '비겁한 타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비겁한 타협'은 결코 공정하거나 정당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업무를 함에 있어서, 과거 동료나 전임자가 행한 적절하지 않은 그리고 적법하지 않은 행위를 발견하게 되면, 그 적법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 그 이유와 사유를 찾아내고 적절한 책임을 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과 함께 적절한 처벌을 하고 적절하지 않은 행위를 올바른 것으로 되돌리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실 그 동안 많은 일을 하면서 이 원칙을 준수하고 고수하는 것이 바른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들면서 이런 원칙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보다는 그 올바르지 못한 행위에 대한 이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올바르지 않거나 잘못된 어떤 행위를 발견하게 되면, 그 잘못된 행위의 결과를 보고 끝까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찾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고 반드시 처벌해야만 하고, 바로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믿고 그것이 타당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원칙을 고수하기 보다는 '왜 잘못된 행위를 해야만 했는가?'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올바르지 않고 잘못된 행위가 판단의 오류인지, 그리고 고의성이 있었는지, 그리고 개인적인 이해관계 등이 작용해서 나타난 것인지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잘못된 판단의 오류이거나 고의성이 없고 개인적인 이해관계 등이 없이 단순한 행정적 과오의 결과였다면, 그리고 그 잘못된 행위를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잘못을 한 행위자에 대해서 그 이유와 원인, 그리고 결과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고 그에 대한 고지를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는 어떤 올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 책임을 묻고 그에 따른 적절한 처벌을 하는 것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믿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그 행위에 대한 원인이 과오나 판단의 잘못 등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잘못된 행위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차원에서 책임에 대한 처벌보다는 '수습'이 타당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나 잘못에 대한 처리 또는 수습을 '합리적인 타협'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합리화'라는 명분에서 분명히 '비겁한 타협'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이와 같은 '비겁한 타협'의 정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조직을 지키고 구성원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칙'에 대한 관대한 적용의 범위를 벗어나는 '비겁한 타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외면적으로 잘못에 대한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처리라고도 할 수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원칙'을 다소 벗어나는 비합리적인 처리나 조치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비겁한 타협'이 소위 책임자에 대한 처리나 조직의 위험성을 감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자의적인 '합리화'의 결과가 추후 자신이 세운 스스로의 '원칙'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이런 행위가 반복될 경우 오히려 조직의 기강과 '책임성'을 감소시킬 위험성을 배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성을 알면서도 점점 더 스스로 '비겁한 타협'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큰 변화에 대한 도전을 스스로 피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많아지는 스스로에게 '비겁한 타협'을 줄여야 하고, 다시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비겁한 타협'보다는 '공정하고 타당한 타협'을 할 수 있도록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광기교수115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2.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3. [사설] 아산만 순환철도, ‘베이밸리 메가시티’ 청신호 켜졌다
  4. [사설] 충남대 '글로컬대 도전 전략' 치밀해야
  5. 대전중부서, 자율방범연합대 범죄예방 한마음 전진대회 개최
  1.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중부권 최대 규모 크리스마스 연출
  2. 경무관급 경찰서 없는 대전…치안 수요 증가 유성에 지정 필요
  3. 이장우 "임계점 오면 충청기반 정당 창당"
  4. 연명치료 중에도 성장한 '우리 환이'… 영정그림엔 미소
  5.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헤드라인 뉴스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행정통합, 넘어야 할 과제 산적…주민 동의와 정부 지원 이끌어내야
행정통합, 넘어야 할 과제 산적…주민 동의와 정부 지원 이끌어내야

대전과 충남이 21일 행정통합을 위한 첫발은 내딛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는 지적이다. 대전과 충남보다 앞서 행정통합을 위해 움직임을 보인 대구와 경북이 경우 일부 지역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지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대전과 충남이 행정통합을 위한 충분한 숙의 기간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1989년 대전직할시 승격 이후 35년 동안 분리됐지만, 이번 행정통..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