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아버지 직업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겠니? "
" 예, 우리 아버지 중구청 청소부(현재 환경미화원)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물어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물었다는 생각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죄책감에 순간적으로 얼룩진 마음이 되었다. 학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 야, 조학수 너 참으로 훌륭하다. 우리 학수가 참된 용기 있는 학생이라서 선생님은 너무 기쁘다. 상담을 하다보면 아버지가 어려운 일을 하시거나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을 하실 경우 부끄럽게 여기거나 천한 일을 하신다는 생각에서 회피하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그리하여 엉뚱한 다른 직업으로 둘러대는 것이 일쑤 있는 일이었는데 우리 학수는 그렇지 않으니 참 훌륭하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시든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일이라면 학수처럼 떳떳하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부모님이 한 팔 없는 곰배팔이나 한 눈 없는 애꾸눈이라 할지라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이분은 우리 아버지요, 우리 어머니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데 너 학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구나. 이 선생님도 학수 같은 그런 아들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청소부(현재 환경 미화원)일을 하는 아버지가 위암 환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은 후벼 파는 아픔으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세월은 그 흔한 고장 한 번 없이 잘도 흐르고 있다. 오는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 새 여운만 남기고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싸락눈이 내리는 이른 아침에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반 애들 자습을 시키기 위해 도마동 대로변 옆길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그 때 마침 중구청 음식물 쓰레기 오물 수거차가 왔다. 그 차에는 50세 안팎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주민들이 내놓은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오물을 수거하느라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10여 m 앞에는 학생 셋이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 아버지' 하고 외쳤다. 음식물 쓰레기 오물 수거하는 아저씨한테 외친 소리였다.
그 소리에 쳐다보니 우리 반 조학수였다. 학수는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 "야, 우리 아버지야 인사들 해"하니 모두들 인사를 했다.
잠시 앞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매사냥꾼 쓰는 방한모에 빛바랜 점퍼를 걸치고 오물 수거를 하던 아저씨가 동작을 멈추고 "학수야, 지금 학교 가는 길이냐?" "예, 아버지! 옷을 좀 따뜻하게 입고 나오셔야지 왜 이렇게 춥게 입고 나오셨어요? 몸도 아프신데 거기다 감기까지 드시면 어쩌시려고요"
믿음직스런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빙긋이 웃는다. 아들 학수도 아버지를 쳐다보고 웃는다. 부자의 따뜻한 가슴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정겨운 말과 웃음은 세상의 어떤 따뜻한 화로의 온기보다 따뜻함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청소부 아버지는 많은 사람 앞에서도 당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들이 고맙고 흐뭇하신 모양이었다. 그런 아들이 얼마나 장하고 믿음직스럽게 보였을까, 그렇기에 이렇게 추운 날에도 장한 아들 생각으로 병든 몸 아파도 눕지 못하고 아픈 몸 끌고 나오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날 이후로 학수가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하는 일이나 잘생기고 못생김과는 상관없이 내 아버지로 존중하고 받들어 모시려는 마음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의 하는 일이 썩은 음식물, 냄새나는 오물을 수거하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부끄럼 없이 < 예, 우리 아버지 중구청 청소부요.> 하는 학수의 늠름하고 인간적인 마음씨는 보석 중에서도 틀림없는 장원 감이었다.
"예, 우리 아버지 중구청 청소부요."
남루한 옷차림의 매사냥꾼 방한모에 빛바랜 점퍼를 걸치고 있는 아버지도, 청소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학수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훈장을 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서도 남아도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학수의 목소리가 지금껏 귀에 쟁쟁한 것은 왜이었을까?
"예,우리 아버지 중구청 청소부요."
"야, 우리 아버지야, 인사들 해."
그것은 바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람다운 모습을 잃지 않은 그 진한 사람냄새 향기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학수가 풍겼던 사람 냄새로 살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학수의 효심과 사람냄새가 골동품이나 천연기념물처럼 여기는 세상이 돼서는 아니 되겠다.
학수의 기림의 대상이 나와 너 우리 모두의 향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니, 자랑스러운 그 인성이 우리 모두의 맥으로 뛰었으면 한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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