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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아 엮음│임상희 그림│나무생각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은 맞다. 마음이 허기질 때 읽는 좋은 글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보고 싶음이나 서러움으로 굶주렸던 마음이 더는 고프지 않게 채워준다.
책 『맛있는 시』는 8년째 EBS FM [시(詩) 콘서트]를 집필 중인 정진아 작가가 음식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를 모아 각각의 시에 대한 단상을 함께 실은 에세이다. 저자는 방송 원고를 쓰기 위해 매일 청취자에게 들려줄 좋은 시를 찾는 과정에서 유독 음식에 관한 시에 인생의 의미가 깊게 배어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음식 시를 소개하는 요일별 코너들을 만들게 됐는데, 여기에 소개한 시와 그 외의 음식 시를 모아 그중 가장 마음을 울리는 시들로 <맛있는 시>를 구성했다. 백석의 '선우사'부터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까지, 이 책에 차려진 67편의 시들은 다양한 맛으로, 온도로, 촉감으로 다가온다.
달고, 짜고, 맵고, 시큼하고, 씁쓸하고, 뜨겁고, 또 차가운 음식은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어엿한 된장이 되는 콩처럼, 우리 인생도 어른이 되기까지 길고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소금처럼 짜디짠 세상맛을 느껴봐야 하고, 고추장처럼 맵고 냉정한 순간도 겪어내야 한다.
저자가 각각의 시마다 덧붙인 감상은 소곤소곤 귓가에 건네는 말처럼 다정하다. '당신과 닭백숙을 만들어 먹던 겨울이 생각난다, 나를 위해 닭의 내장 안에 쌀을 넣고 꿰매던 모습. 나의 빈자리 한 땀 한 땀 깁는 당신의 서툰 바느질'이 담긴 박형준의 시 「봄비」에서는 받은 만큼 주지 못한 시인의 미안함을 들려준다. '냉장실 한 귀텅이 / 밀가루 반죽 한 덩이 / 저놈처럼 말랑말랑하게 /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라는 한미영의 시 「밀가루 반죽」을 읽고는, 울기도 싸우기도 하는 결혼생활의 시간들이 팍팍 치대져 말랑말랑한 반죽이 된 거라고 말해준다. 중간중간 개 한 마리가 돌아보는 골목길, 채소가 가득 든 된장찌개 등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림도 저자가 차려 놓은 시의 밥상에 입맛을 돋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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