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무르익어가는 4월 중순, 기자는 대전시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을 찾았다. 사라져 가는 소제동 일대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평소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기자는 디지털카메라와 최근 새로운 취재장비로 주목받고 있는 360도 VR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360도 VR 카메라는 전후좌우 풍경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장비로 소제동의 좁은 골목길을 입체적으로 촬영하기 위해 동원했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일제강점기 대전역 철도기술자들이 거주하던 집단거주지로 1920~30년대 조성된 곳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풍파 속에서도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과 60~70년대 개발 시기에 지어진 시멘트 벽돌집이 뒤섞인 모습이 이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70~80년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대전시 동구 소제동 299번지 일대
벽돌로 지어진 허름한 담장과 녹슨 철제 대문을 보고 있으면 드라마나 영화에 들어간 듯 착각을 일으킨다. 인위적인 세트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기운이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을 타고 전해진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대동천 주변으로는 벽화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전통나래관 앞 칠갑교에서 가제교 사이 250m 구간에 집중되어 있으며 소제동 주민들의 일상을 테마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새겨져 있다.
소제동 대동천 일대 벽화마을
짚을 엮어 만든 간이 다리도 있다. 대전의 무형문화재 장인들과 조각가, 예술가, 지역주민 90여 명이 완성한 '능청다리'다. 과거 대동천에 실제로 존재했던 다리를 재현한 작품으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찾으면서 소제동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전시작품이라 사람이 건널 수는 없다. 오는 7월까지 전시 후 철거될 예정이다.
소제동 대동천을 가로지르는 능청다리, 대전의 장인들과 조각가,예술가, 지역주민들이 짚으로 엮어 만든 다리다. 과거 대동천에 놓여진 능청다리를 재현한 작품이다. 사람이 건널 수는 없으며 오는 7월까지 전시 후 철거될 예정이다.
대창이발관은 소제동에서 가장 인기 좋은 핫 플레이스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창이발관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관 중 하나이며 81세의 이발사가 현재도 영업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소제 창작촌은 철도관사를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지역 예술가와 작가들의 교류와 도보 여행자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소제동 철도관사촌 주변으로는 지난해 부터 매입된 집들이 철거되고 있다. 골목 안쪽으로는 현대식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곳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09년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로 10년간 지지부진했던 소제동 일대 개발 사업이 조합설립 인가로 본격 추진되고 있다. 마을 입구 도로 건너편 위치한 중앙1구역은 최근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곳에는 28층의 고층 아파트와 부대시설이 들어선다.
변화는 골목 깊숙한 곳에도 진행되고 있다. 외지인들이 매입한 건물들이 철거되고 있고 그 자리에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장식된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건물의 철거를 알리는 스티커와 현수막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소제동에서 40년째 살고 있다고 밝힌 70대의 한 주민은 "빈집들이 하나둘씩 늘더니 지금은 사람 사는 집이 거의 없다"며 "개발을 하느니 마느니 말들 많았는데 이제는 정말 (소제동을)떠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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