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금반지 한 돈을 구입했다. 금반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금반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 우뚝하다. 아들의 백일을 앞두고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그 바람에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충격 역시 아퀴를 짓기 힘들었다.(注: 아퀴를 짓다 = 어수선한 일을 갈피 잡아 끝매듭을 짓다.)
궁여지책으로 일가친척들이 선물한 금반지를 처분하여 어찌어찌 백일잔치를 마쳤다. 3년 뒤엔 딸 역시 백일잔치를 했다. 그 즈음에도 경제적 고초(苦楚)가 꽤나 핍박(逼迫)하였기에 빚구럭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강물 같은 인생을 사노라면 삶이라는 항해는 무시로 풍파와 파선(破船)까지를 동반하는 누렁물의 야누스로 돌변하는 게 우리네 필부의 삶이다. 그래서 딸의 백일과 돌잔치 때 들어온 금반지까지를 야금야금 죄다 팔아먹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아빠가 아닐 수 없었다.
세월은 여류하여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다. 소위 명문대 합격증을 받아두고 있던 딸은 그날 학교서 주는 상의 50%를 휩쓸었다. 대상(大賞)까지 거머쥐었는데 부상으로 받은 게 무거운 금메달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아내는 그 금메달을 채 구경도 하기 전에 냉큼 빼앗았다. "이것까지 팔아먹으면 당신은 진짜 사람도 아냐!" 이처럼 나에겐 아들에 이어 딸이 받은 금반지까지를 처분한 '전과자(前科者)'라는 부끄러운 경력이 실재한다.
이로 말미암아 아내에게 있어 나는 마치 금지옥엽 딸 심청을 공양미를 받고 팔아먹은 심학규 이상의 후안무치한 남편으로 각인돼 있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자업자득이니 하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게 못난 나의 탓이니 누굴 원망할 것인가.
지난 며칠 사이 뉴스에선 부동산(투기 의혹)과 주식투자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국회 청문회가 국민적 화두로 진입했다. 여기서 후보자들은 자신에게 쏠린 의혹을 아내 탓, 남편 탓으로 돌려 공분의 대상으로 추락하기까지 했다.
4월 11일 TV조선 [신동욱 앵커의 시선]에서는 '청문회의 아내 탓, 남편 탓'이란 보도를 냈다. = (전략) 옛말에 "보리쌀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고 했습니다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래 처가 덕에 재산을 쌓았다는 후보가 적지 않았습니다.
탈세나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모두 장인과 아내가 한 일' 이라고 미루기 일쑤여서 '처갓집 청문회' 라는 말도 나왔지요.(...) 법과 제도를 따지지 않더라도 보통사람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검사 출신 여당 의원이 고개를 저은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이해관계가 얽히는) 판검사가 주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다고 배웠는데…" (...) 현 정부 출범 후 2년이 채 안 돼,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후보자가 열두 명에 이릅니다. 사회적 논란이 큰 사람을 어떻게 이리도 잘 골라내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후략)" =
언제부턴가 '강남좌파(江南左派)'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는데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신계층의 하나로, 몸은 상류층이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진보적 이념을 가진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강남은 실제 거주지역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생활수준을 향유하는 계층을 말한다.
2005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범여권 386세대 인사들의 자기모순적 행태를 비꼬는 말로 쓰면서 일부 학계와 언론계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필자의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이들 강남좌파들의 특색은 '내로남불'에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국민적 르상티망(ressentiment)이야 있건 말건 신경도 안 쓴다.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가 흠결이 있는 게 뻔함에도 그들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초록은 동색(草綠同色)의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까지 창궐해 있다.
어쩌다 낙마를 할지라도 정치적 덫에 걸렸다며 되레 분개하는 모습에선 그들의 후안무치를 새삼 발견하기까지 한다. 강남좌파는커녕 시골 촌놈 출신에 빈곤을 덕지덕지 붙이며 살아온 무지렁이다.
그러나 누구처럼 부끄럽게 치부(致富)하거나, 애먼 아내 탓 역시 한 번도 안하며 살아왔노라 자부한다. 오늘도 옹알이를 하고 있는 외손녀의 보며 삶의 시름을 잊는다. 세월이 흘러도 불변한 금(金)의 가치처럼 외손녀가 항상 빛나는 공주님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길 기도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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