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2007년부터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는 매년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향을 종합해 '올해의 키워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
작년 가을 출판된 '트렌드 코리아 2019' 키워드 중 큰 반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단어가 ‘카멜레존’(chamele-zone)이다. 주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바꾸는 파충류 동물 카멜레온(chameleon)과 공간을 뜻하는 영어단어 zone을 합성한 신조어다. 공간이 특정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상황을 달리해 다양한 쓰임새로 변모함을 뜻한다.
주말에만 이용되는 결혼식장이 주중에는 전시장으로 활용되거나 아침과 점심에는 브런치카페로 영업하다가 저녁과 밤에는 주점으로 변하는 가게가 그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도 얼마 전부터 휴대폰 대리점 한켠에 카페가 차려지더니 한적한 약국에서 커피를 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트렌드 코리아'의 저자는 '공간의 재탄생(Rebirth of Place)'으로 정의하면서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굳이 잠은 침실에서 자야하고 일은 사무실에서만 해야 하며 공부는 도서관에서만 가능한가를 자문해보면 다른 대답이 어렵지 않게 찾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실 긴 소파에서 대형화면의 TV를 보다가 잠들 수도 있고 재택근무는 일상화된 개념이며 대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카페를 찾는 일은 이미 낯선 풍경이 아니다.
도시계획 분야에서도 오랫동안 공간을 상업지역과 주거지역, 녹지지역 등 용도별로 나눠 관리하던 원칙이 무너지고 있으며 복합용도개발이 새로운 대안으로 정착하고 있다. 공간을 철저히 구분할 경우 편리보다는 불필요한 자동차 이동을 촉발하면서 공해와 시간 낭비 등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생활리듬과 맞지 않다. 앞으로의 도시생활은 불필요한 이동은 최소화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은 최대로 가능한 인간의 욕망을 점점 더 많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대학캠퍼스는 주로 미국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도시 주변부에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흡사 공원과도 같은 캠퍼스에 건물들이 흩뿌려지듯 배치돼 있지만, 학생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긴 통학시간을 허비하기 일쑤다.
반면, 유럽의 대학들은 도시 중심에 건물 단위로 캠퍼스가 꾸려진다. 학생들은 이로운 위치여건을 바탕으로 도시가 주는 각종 문화생활을 보행거리 범위에서 누리며, 점심은 인근 식당가에서 해결하고 저녁에는 토론과 여흥을 가까운 술집에서 즐긴다. 대학생들은 도시에 활력을 만드는 아주 매력적인 주체이자 큰 소비자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시 ‘4생활권’에 만들어지는 대학시설 용지는 대학별 닫힌 캠퍼스가 아닌 상업 및 문화시설과 융화돼 도시에 활력을 만들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구조로 개발했으면 좋겠다. 대학의 기능이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닌 산학협력과 벤처창업의 모멘텀을 만들어가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도 혁신주체이자 경제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교용지를 민간에 숙고 없이 분양하는 일은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내 소유의 땅을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울타리를 두르는 일이지 않은가?
세종시에는 이런 대학캠퍼스를 상상해 본다. 대학시설 용지를 개별대학에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공개념을 적용한 연합 캠퍼스타운으로 개발한다. 참여 희망대학은 건축비와 토지 사용료를 부담하면서 경쟁력을 갖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안전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는 일부 연구시설을 제외하고는 강의실 등 모든 대학시설을 가로변 상업용지에 배치해 학생들은 편리한 도시생활을 즐기고 시민은 자유로이 대학시설을 평생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이용한다.
대학기숙사도 주거지역에 섞이도록 배치한다. 대학생들은 세종시의 활력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이런 모델은 새로운 대학캠퍼스의 혁신적 실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학시설이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카멜레유니(Chamele-Uni)를 꿈꾼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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