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 |
10개의 관사촌에 다양한 전시와 작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벚꽃 개화에 맞추어 테미공원에서는 벚꽃 축제가 열렸다. 이런 행사들이 줄을 이어 열리다 보니 테미공원을 중심으로 문화 산책로가 생긴 느낌이다.
테미공원 길목은 1년 중 열흘 정도만 소란하다. 벚꽃이 피면 인산인해까지는 아니더라도 355일 방문하는 숫자보다 이 기간에 찾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벚꽃이 지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밤 8시가 되면 개도 짖지 않는 동네가 된다. 테미오래, 테미창작촌, 테미공원은 나에게 친구 못지않은 산책로다.
내가 머물고(미룸 갤러리) 있는 지역은 대흥 1구역이다. 이 지역은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어 여러 불편한 상황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도시가스는 물론 집을 고치는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재개발이 될 수가 있어 돈을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특히 이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 연세(60세 이상)가 있으신 분들이다 보니 오랜 습관처럼 불편함을 동무 삼아 지내고 있다.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다 심심해 지면 20분 코스 산책로를 걷는다. 갤러리에서 나오면 첫 번째 골목을 만난다. 그 골목을 따라 100여 미터 걷다 보면 테미 고개가 나온다. 테미 고개를 넘으면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만나고 그 계단을 오르면 잠시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내리막길에서 공원으로 들어가는 나무 계단을 오른다. 길은 계절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운치를 보여준다.
테미공원을 빠져나오면 바로 옆에 테미창작촌이 있다.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전시(평면, 입체, 영상, 융복합 작품)를 구경한다. 세금으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테미오래를 돌아 다시 갤러리로 돌아오면 30분이 걸린다. 예전에 테미오래가 개방을 하지 않았을 때는 20분 정도 걸렸는데 늘어난 10분의 시간이 삶을 더 여유롭게 만든다.
30분을 걸어 빌라 앞에 있는 세 그루의 나무를 만난다. 100년이 넘은 상수리나무가 동네를 지키는 당산나무처럼 서 있다. 동네 할머니들은 봄에는 이곳에 음식을 만들어 드시곤 한다.
나에게 대흥 1구역은 도심의 골목, 골목과 골목을 연결해 주는 계단, 계단과 계단을 좆으면 공원을 끼고 도는 오솔길. 도심에 이런 산책길이 아직 남아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 곳을 모두 갈아엎어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병풍처럼 테미공원을 둘러싼 아파트가 대전 시민의 공간은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서 중구의 구민들, 지금 대흥 1구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 역시 새로운 아파트의 주인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산책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도시를 지향하는 대전시나 중구가 환경영향평가를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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