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신채호 선생의 투쟁과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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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신채호 선생의 투쟁과 역사의식

장준문(조각가, 수필가)

  • 승인 2019-04-12 10:3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244px-단재신채호

                    

4월 11일은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의 날이다. 정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에선 기념행사를 열고 각종 매체들도 다양한 특집물들을 쏟아내고 있다. 임정 요인들 중 우리지역 출신들도 적지 않지만 요즘 부쩍 신채호 선생(申采浩, 1880~1936)에 관한 기사가 빈번하다. 지금까지 단재선생은 업적에 비해 다소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은데 광복 이후, 특히 이승만과 상해임시정부시절의 갈등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한다.

 

신채호 선생은 한일강제병탄기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문학가로서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일제의 한국사 왜곡에 맞서 우리의 역사를 정립한 위대한 민족사학자로서 처절하던 우리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단재(丹齋)라는 호처럼 어느 위인적 독립운동가들 못지않게 학문으로부터 무장투쟁까지 일생을 바쳐 치열하고도 끊임없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삶이었다. 

 

선생은 지금의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전통적 유교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나셨는데 어린 시절부터 사서삼경을 독파하는 등 남다른 영특함을 보였다고 한다. 19세 경 성균관에서 개화파와의 교분을 시작으로 독립협회와, 박은식, 신규식 선생과의 접촉 등으로 민족주의적 세계관과 개화자강사상에 눈뜨게 되었다. 1905년 26세에 황성신문 논설기자를 거쳐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온 국민이 국권회복에 노력할 것을 설파했다. 

 

주필로서도 ‘일본의 삼대충노(三大忠奴)’, ‘서호문답’, ‘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 등의 논설로 국민의 항일정신을 일깨웠다. 1907년엔 안창호 등과 비밀결사체인 신민회에 창립위원으로 참여하여 ‘대한신민회취지서’를 기초하고, 실천적 계몽사상가로서 민족사 연구와 사론(史論)인 ‘독사신론’을 비롯한 논설에서 이순신 등 민족사적 영웅들의 전기로서 민족자강주의를 구현하기도 했다.

 

1910년 4월 신민회 간부들은 국내에서의 국권회복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지사들은 청도(靑島)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상해 등지를 전전하며 무관학교 설립, 광복회 조직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고, 1차 세계대전 종전에 가까워 1918년 망명지도자들은 만주 길림에서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는 등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략을 모색했다. 선생은 이 시기 만주 일대의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답사하는 등 민족사학의 실증적 토대를 준비하고자 했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임시정부 발기회의에 참가했는데 의정원회의에서 이승만이 국무총리로 추대되자 그가 윌슨에게 한국에 대한 위임통치청원서를 제출한 것에 분노하여 퇴장해버렸다. 9월엔 상해임시정부가 노령임시정부(국민의회),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는 임시정부로 재편될 때는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아예 임정과 결별을 선언하고 말았다. 선생의 대쪽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1919년경부터 중국에서의 항일활동은 무장투쟁방식으로 집중됐는데 선생은 의열단의 독립운동 노선과 투쟁방법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다. 그것은 폭탄, 단총과 함께 의열단원들이 휴대하는 필수품으로써 국내, 중국, 일본 등지의 단원들에게 널리 배포됐고 동포들의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자료로도 활용됐다고 한다. 

 

 1923년 상해에서의 국민대표회의가 실패로 끝나자 실망으로 칩거하면서 근대민족사학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했는데 ‘조선상고사’는 서구의 근대 역사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 역사방법론으로서 한국사의 자주적 체계화를 시도한 역저라는 평이다. 민족을 역사의 주체로 하는 주체성의 문제를 사관(史觀)정립의 기본전제로,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즉 나와 남 사이의 (투쟁)관계로서 역사는 존재한다는 투쟁사관을 제시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후 선생은 점차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 활동에 나섰다가 1928년 일경에 채포되어 뤼순 감옥에서 1936년 고단하고 치열한 생을 마감하셨다. 지난 2월 21일은 선생의 순국83주기의 날이었다.  

 

선생의 민족사연구 업적은 오늘 재야 한국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일제는 한일강제병탄 후 대한제국에 대한 강제적 동화정책을 폈으나 3.1독립운동 후 강압적 통치의 한계를 느끼고 한국을 영구 지배할 문화적 동질화전략으로 전환했다. 민족성 말살정책의 시작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등을 고문으로 한국사를 왜곡 축소하는 반도사(半島史)의 편찬사업을 시작해 1938년까지 37권의 방대한 ‘조선사’를 발간했다. 

 

여기서 ‘내선일체’ 등 지배이데올로기의 논거로 고대에 야마도 족과 한민족이 하나였다는 ‘일선동조론’과, 야마도가 4세기경 한반도 남부를 2세기 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 등 조작된 사실로 자국의 우월성과 한국인의 열등의식을 조장하는 식민사관을 폈다. 한국사를 만주사의 부용적(附庸的) 위치로 격하시키는 만선사관, 조선왕조의 중국에 대한 사대외교 등 지정학적 이유로 한민족의 자주성을 부정하는 반도적 성격론, 한국사는 세계사의 보편적인 발전과정을 겪지 못하고 정체되었다는 정체성론, 조선시대 당파 간 정쟁 등이 체질적 특성이라는 당파성론 등이었다. 따라서 근대문명사회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일본의 지도가 필연적이라는 논리인 것이다. 극단적 아전인수 격  사실왜곡이었다.

 

단재는 이 같은 일제의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자주독립을 위한 이론 개발과 사실 발굴이 한국사학의 중요한 과제라는 걸 통감했다. 그것은 과거 왕조중심의 역사학과 일제의 식민사학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한민족의 주체적인 민족주의사관의 정립이 필수라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재는 환단고기 등의 단군조선의 실체를 한국 상고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등 우리의 민족사적 기원을 밝히고, 대륙적 패기와 기개를 가졌던 고구려 발해시대사에 천착하여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주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총독부의 민족말상정책의 논리에 대응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의 논리에 영향 받은 주류사학인 이병도의 강단사학에 대응하는 사학으로서도 의미가 크다. 선생은 역사연구가 곧 민족독립운동이라는 신념으로 비록 비주류사학이지만 민족사학을 일으킨 역사학계의 큰 어른으로 가장 존경받는 사학자로 알려져 있다. 

 

지금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의 해에 대전에서도 단재선생선양사업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들린다. 반가운 소식이다. 과천과 청주에는 이미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대전에도 어남동 생가에 초라하나마 동상이 있다. 

 

올해는 중앙로 어디쯤 선생의 동상을 건립한다는 소식도 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영웅으로, 대전을 상징하는 역사인물로써 선양사업이 충실히 시행되길 기대한다.

 

차제에 정부에도 바란다.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의 해를 맞아 4월 11일을 4대국경일의 하나로서 제헌절을 대체하는 ‘건국절’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

 

장준문(조각가, 수필가)                             

장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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