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만 4년 넘은 흰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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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만 4년 넘은 흰 장갑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

  • 승인 2019-04-10 08:40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권율정 원장님
국립대전현충원장
어떤 미담 거리가 알려지고 난 뒤에 그것과 다르다면 조금은 황당하다. 내가 현충원에서 주말, 공휴일 포함하여 거의 연중 사용하는 흰 장갑이 연륜이 4년이 넘다 보니 약간 화제다. 작년 이맘때 어느 중앙지에 보도가 되고 최근에 다시 보도된 뒤에도 그래도 떳떳한 것은 그때만을 위한 '쇼'가 아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 장갑을 사용한 계기가 있다. 4년 전인 2015년 3월에 매일 합동안장식의 분향 재료를 기존의 화학제인 만수향에서 천연 향나무 재료로 변경하면서 지금 현재의 장갑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면장갑에 향나무 재료가 묻기에 약간은 나이론 소재가 가미된 현재의 장갑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 역시 1회용으로 끝날 수 있지만 평소대로 소중하게 사용하였다. 지난 63주년 현충일 추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님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님을 모시고 현충탑 참배 이외에 8곳의 묘역을 참배 집례 당시에도 그 장갑이었고, 대통령님을 모시고 제주 4.3 사건 70주년 참배 집례 등 나머지 세 곳의 집례 때도 그 장갑을 착용하였다. 당연하지만 세탁도 내가 직접 한다.

이제는 나의 분신이 된 그 장갑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귀하게 집행하는 실천적 모습이다. 나의 지론 가운데 하나가 '평소에 잘하자' 이다. 현재 우리 현충원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달력 등 여러 자료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얼마에 만들었습니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그러한 연장 선상이다.



둘째로 이렇게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현충관과 현충문 등에서 사용하는 장갑의 내구연한도 상당히 길어졌다. 직원들에게도 적어도 한 달 이상 사용하도록 권장하여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약하여 사용하고 있다.

셋째로, 조금 의식 있는 사람은 이런 지적을 할 수 있다. '혹시 저렇게 절약한다고 하면서 작은 것에 집착하여 큰 것은 낭비하거나 간과하지 않는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주 경계하면서 모든 예산 집행을 소중하게 역사적 책임 의식을 갖고 접근하고 있다.

넷째로, 역시 비판적 측면에서 '이렇게 절약하면 소비가 줄어들어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나로서는 직선적으로 '그렇다면 마치 부정부패나 적어도 낭비를 조장하냐'고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제 위축 지적은 경제학적 측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거시 경제면에서 보더라도 소비를 통한 주체는 개인과 기업이지 정부가 아니다. 결국 정부지출은 세금을 통한 것인데 세금을 과도하게 징수한다면 개인과 기업은 활력을 잃는다. 그리고 세금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세금을 피하는 방법은 슬픈 현실이지만 '죽음' 이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세금을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냉혹하게 징수한 세금에 비하여 정부 예산 집행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연중 주말과 국경일 등을 포함한 휴일이 거의 120일 안팎인 것을 보면 거의 정확히 연중 2/3 정도 근무일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현충원 이곳이 근무뿐만 아니라 휴일과 휴식의 장소다 보니, 거의 연중 내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일 합동 안장식을 주관하여 흰 장갑을 사용한다. 그래서 근무일로만 보면 그 장갑은 6년의 연륜을 보여준다. 그러한 세월을 반영하듯 세탁을 하여도 본연의 흰색이 조금은 탈색된 상태다. 그래도 이 흰 장갑에 대한 아주 특별한 애착을 갖는 점이 있다. 바로 4년 전인 2015년 5월 말부터 거의 정확히 2개월 동안 MERS (중동 호흡기증후군) 광풍이 지배한 적이 있었다. 거의 모든 정부 행사가 정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충원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합동 안장식을 진행하였다. 당시에도 지금 현재 장갑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MERS 를 이겨낸 장갑이다.

지금 그 장갑 가운데 오른쪽 장갑의 엄지와 검지를 매일 합동안장식 분향 시에 사용하다 보니 다른 부분에 비해서 더 헤졌다. 그간 여러 기회에 주변에 자주 언급한대로 헤진 그곳에 구멍이 뻥 날 때까지 근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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