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은 언례에 대한 동정보다는 멸시와 따돌림, 그리고 불결함까지 느끼게 된다. 남의 집 일을 해 주며 근근이 남매를 키우는 20대 후반의 과부 언례는 성폭행당한 것에 대해 수치와 주위의 멸시에 죽고 싶은 심정이나 어린 자식들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한다.
그러던 중 강 건너에 미군 부대가 진주하게 되고 그들을 따라 양색시들이 부대 주변에 텍사스 타운을 형성하고 머물게 된다. 살기가 막막한 언례는 최후의 수단으로 텍사스 타운내 용녀(김보연 분)와 순덕(방은희 분)이 일하는 클럽에서 일하며 생계를 연명하게 된다.
황훈장(전무송 분)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언례가 양색시가 됐다는 사실에 더욱 불쾌해 한다. 따라서 이 장면을 보면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을 '환향녀'라 불렀다는 역사적 교훈까지를 덤으로 생각나게 한다.
청나라 군인들에게 정조를 잃은 여자들은 바로 귀향하지 못하고 청의 사신들이 묵어가던 홍제원이 있던 서대문 밖에 머물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환향녀들로 하여금 냇물에 몸을 씻게 하고 그들의 정절을 회복시켜 주었다. 하지만 가족과 친지들은 환향녀들을 받아들이기를 기피하고 천시하였다.
결국 의지할 곳이 없어진 환향녀들은 스스로 청나라로 가거나 서대문 밖에 모여 살았으며, 심지어 창부가 되어 연명한 경우도 허다하였다. 이 영화에서도 느끼는 교훈이지만 전쟁이 발발하여 외세가 개입하면 아녀자들이 가장 피해를 본다.
따라서 자주국방(自主國防)의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무튼 영화의 연장 선상에서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한 때는 '튀기'라고 비하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튀기는 종(種)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난 새끼를 뜻하는 때문이다. 오늘은 오래 전 구입한 [우리말 사용설명서 - 교열기자 이진원의 국어 실력 업그레이드 비법]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부산일보 교열팀장이 저술한 것으로 자신의 언어관에서부터 재미있는 우리말의 어원, 헷갈리고 틀리기 쉬운 우리말, 버려야 할 일본어 잔재, 외래어 바로 쓰기, 깔끔하고 좋은 문장 쓰는 비법, 우리말 표기법 제대로 알기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내용이 모두 훌륭함 일색이지만 개인적으로 더 후한 점수를 주고픈 대목은 '조심히 써야 할 말'(P.36)이었다. 글자 한 자만 잘 못 써도 때론 봉변을 당하는 것이 우리말의 어떤 특징이다.
예컨대 고속철도를 '고속절도'로 쓰면 어찌 될까! 또한 선수의 양심을 '선수의 앙심'으로, 섬 여행을 '성 여행'으로 썼다면 이처럼 대략난감이 또 없다.
얼마 전까지 시장에 나가보면 봄동(노지(露地)에서 겨울을 보내어, 속이 들지 못한 배추. 잎이 옆으로 퍼진 모양이며, 달고 씹히는 맛이 있다.)이 한창이었다.
이 봄동을 과거엔 '얼갈이'라고 불렀다. 봄동은 겉절이로 만들거나 된장국, 부침개로 만들어 먹어도 별미다. 3월 26일자 데일리팝의 <[싱글레시피] 봄의 영양을 듬뿍! 구수하고 담백한 '봄동된장무침'>엔 다음과 같은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 "봄동과 구수한 된장의 만남으로 봄맞이 음식인 봄동된장무침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봄동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채소 중 하나로 아삭한 식감으로 겉절이와 나물 무침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봄동은 단백질과 지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육류와 함께 먹으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봄동된장무침 만드는 방법◇ 재료: 봄동 2통, 소금 2 큰 술, 실파 1줌, 두부 1/2모, 대추 5개 / 양념 재료: 된장 6 큰 술, 고추장 1 큰 술, 고운 고춧가루 1 큰 술, 다진 마늘 3 큰 술, 깨소금 2 큰 술, 참기름 2 큰 술 /
1.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봄동 줄기 부분을 넣고 5초간 데치고 이파리 부분까지 넣고 3초 후 건진다. 2. 데친 봄동을 찬물에 담가 식히고 물기를 꽉 짜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다. 3. 끓는 물에 실파를 줄기부터 넣고 5초간 데치고 눕혀서 3초간 더 데치고 찬물에 담가 식힌다. 4. 실파의 물기를 꼭 짜고 나무젓가락으로 꾹꾹 눌러 진을 뺀 뒤 1/4길이로 자른다. 5. 볼에 손질한 봄동과 실파, 양념재료, 으깬 두부를 넣어 섞어주면 완성." =
그림만 봐도 금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제는 요즘 한창이라는 주꾸미를 먹으러 갔다. 허나 식당의 차림표에선 여전히 '쭈꾸미'라고 다르게 표기하고 있었다. 필자도 얼추 매일 글을 쓰지만 항상 '글 조심'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끌밋(끌밋하다 = 모양이나 차림새 따위가 매우 깨끗하고 훤칠하다)한 글을 남기는 것은 퍽이나 어렵다. 때문에 글 쓰는 것도 중노동이라고 했지 싶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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