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보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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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보아야 할 것들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4-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팡이
게티 이미지 뱅크
허리와 다리가 아픈 이유를 알았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몸을 거동조차 할 수 없어서 병원에 입원한 후, 지팡이에 의지하여 거동을 할 수 있고 수업도 해야 하고 할 일들도 많아 퇴원을 하였지만, 통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평소 다니던 정형외과 주치의 선생님의 결정으로 MRI를 찍고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원인은 소위 말하는 허리 디스크 판막이 터져 신경을 눌러 통증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 원인이 평소 경험하지 못한 통증을 가져온 것이고,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긴급으로 병원에 와서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 대학의 한방병원에서 적절한 완화치료를 받고 극심한 통증의 고비를 넘긴 탓에 당장은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싶습니다.

정형외과 주치의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명의로 알려진 분이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으니, 선생님의 말씀대로 진통제를 포함한 약물치료를 당분간 하고 있습니다. 한방병원에서 통증을 완화시키고 지팡이를 짚고 거동하게 되어 퇴원하였지만, 당장 수업과 중요한 회의 일정 등으로 다소 무리한 탓인지 통증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팡이를 짚고 열차를 이용하여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가야만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약 30분이나 일찍 서둘러 대전역에 나갔습니다. 다행히 열차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역에 도착해 대합실에서 기다리면서 그 동안 알지 못한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와 같이 지팡이를 짚은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막상 거동이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보니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보행이 힘들어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평소에는 거동이 힘드신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사용할 것이라는 편견이 아마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팡이를 사용하고 보니 나이가 드신 어르신뿐만 아니라 20대와 30대의 젊은 분들도 지팡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 자기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만을 인식하고 의식하고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인식하게 된 이 사실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아마도 많은 것을 보고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보아야 함에도 볼 수 없고, 보고 있지만 잘못 보고 있을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서 보여 지고 있는 것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면 아마도 그것은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보아야 하고 인식해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의 판단이나 생각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하면, 아마도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편협한 의식이나 편견이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잘못 보고 또한 처음부터 보지 못하고 인식조차 못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눈앞에 나타나 있고 존재하는 사실조차도 우리의 생각이나 사고나 의식에 따라서 볼 수도 있고 볼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왜곡된 사실로 인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그 동안 살면서 이런 잘못을 수없이 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지조차 못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조직이나 구성, 규범이나 규칙, 그리고 마치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들도 자기 자신의 편의에 따라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편협한 의지와 인식에 따라 왜곡된 형태로 그것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정책의 결정이나 판단도 보아야 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고 판단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고 주관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그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던 아버님을 위해 사드린 지팡이를 이제 아버님의 유품으로 물려받아 내가 짚고 다닙니다. 이 지팡이는 보행이 불편하신 것을 보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사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생전에 아버님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것을 꺼려하시고 불편하지만 가능한 그냥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막상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 보니 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 우선은 보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이 불편해서 보행이 힘들다는 것을 지팡이를 통해 다른 분들에게 알리는 것도 그 지팡이의 기능이라는 생각입니다. 보행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보행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다른 분들에게 양해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때문에 많은 배려도 해 주셨습니다. 비로 이런 것들이 지팡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지팡이를 짚지 않고 불편한 다리로 다녔다고 하면, 내 스스로 보행이 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나로 인해 다른 분들의 보행에 적지 않은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팡이 하나가 이런 것들에 대해 나와 다른 분들과 묵시적인 표시와 이해와 양해 그리고 배려에 동의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를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전에는 왜 알지 못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가 아닌 다른 것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무수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보아야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마도 수없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것도 무수히 많을 것이고, 보고 있다고 하지만 잘못 보고 있는 것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잘못과 오류가 인간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오류와 한계를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아집과 편견과 오해를 최소화함으로써 다소 나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을 경계함으로써 다소 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님의 유품이 되어버린 지팡이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그 동안 보지 못한 것은 없는 지, 잘못보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창밖에 봄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봄기운이 가득한 주말, 행복한 시간되시길 기원합니다.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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