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잔치잔치 잔치국수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잔치잔치 잔치국수

  • 승인 2019-04-03 10:09
  • 신문게재 2019-04-04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잔치국수
대전 대사동에는 금요장터가 있다. 금요일마다 농협 주위에 장이 선다. 대전 근교에서 농사짓는 주민들이 채소, 과일 등을 가져와 판다. 직거래인 셈이다. '장돌뱅이'들도 온다. 금요일만 되면 그곳은 북적북적 5일장을 방불케 한다. 난 금요일이 휴무라 장도 보고 그곳에 단골 미용실이 있어 머리 할 때가 되면 들른다. 자그마한 미용실인데 주인이 소탈하고 솜씨도 좋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고객은 주로 할머니들이다. 그래서 구수한 얘기들이 오간다. 춤바람 난 할머니의 연하 애인 얘기며 속썩이는 영감 욕에 웃고 한숨 짓는, 사람 사는 거는 다 똑같다. 종종 군것질 거리도 나온다. 한번은 영화감독 임순례를 꼭 닮은 아주머니가 동태전을 가져와 다 같이 나눠먹었다. 미용실 주인과 허물없이 지내는 모양이었다. 미용실 앞집인데 금요일 하루만 문 여는 식당 주인이라고 했다. 다른 날은 세차장을 한단다. 주 메뉴는 잔치국수이고 생선전, 김치전 등을 파는 집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 장을 보고 내친 김에 잔치국수를 먹으러 그 식당으로 갔다. 간판이 그냥 '백반분식'이었다. 주방만 건물에 딸려 있고 세차장에 임시 천막을 치고 플라스틱 탁자와 간이 의자를 놓은 게 다였다. 아주머니는 잔치국수 만들고 딸은 부침개를 팔았다. 한참만에 잔치국수가 나왔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고명이 푸짐했다. 계란 지단, 김치, 호박, 시금치, 김이 먹음직스럽게 국수 위에 얹어 있었다. 국물을 맛봤다. 진하고 깊은 맛이 났다. 삭힌 고추와 함께 후루룩 뚝딱 해치웠다. 여느 국수집에서 먹던 맛과는 달랐다. 시끌벅적한 장터에서 먹으니까 옛날 시골 장에 온 기분도 났다. 주인 아주머니는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길가에 앉아 물건 파는 장꾼들한테 쟁반에 국수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가해진 틈을 타 육수 만들 때 뭘 넣느냐고 물었다. 무, 새우, 북어, 고추, 마늘, 생강, 멸치, 다시마를 넣는다고 했다. 다시마는 남해 바다 섬에 사는 아는 언니한테서 공수해 오는 것이란다. 이렇게 많은 재료를 써도 손해 안 보니까 파는 거겠지?

잔치국수는 뭐니뭐니해도 잔칫날 먹는 게 최고다. 어릴 적 동네 잔칫집에서 먹었던 국수 맛은 잊을 수 없다. 배가 고팠던 시절이고 추억이라 더 맛있게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따져봐도 훌륭한 맛이었다. 그 시절 잔치는 동네 사람들이 배에 기름 좀 끼는 날이다. 돈깨나 있어 동네서 행세하는 집은 며칠에 걸쳐 잔치를 벌인다. 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도 잔칫집에 가서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다. 그땐 내 일 네 일 구분 않고 큰 일이 있으면 협동하는 시대였다. 아낙들은 음식을 만들고 남정네들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흥청거린다. 그러다가 시비가 붙어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여간 맛있는 음식들이 방마다, 마당에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지는 터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불리 먹는 날이다.

국수 육수는 큰 가마솥에 닭을 몇 마리 넣고 푹 끓인다. 거기다 다른 것도 넣었을 것이다. 가마솥 닭 육수는 물을 부어가며 하루종일 장작불로 끓인다. 손님이 계속 오니까 국수를 계속 끓여내야 한다. 푹 익은 닭은 살코기를 발라내고 뼈는 솥에 다시 들어간다. 그 닭 육수로 만든 국수가 정말 기가 막히다. 충청도식인지는 모르지만 잔치국수에는 떡국떡도 들어간다. 고명은 종이처럼 얇게 부친 계란 지단과 실처럼 가늘게 채 썬 홍고추가 전부다. 지금도 생생하다. 국물 맛이 집에서 키운 닭 육수라 구수하면서 담백한 그 맛! 달디 단 국물을 코를 훌쩍이며 그릇 째 들고 마셨던 유년의 잔칫날이 새삼 생각난다. 지금은 바쁜 세상이고 또 세월따라 사람 사는 방식이 변해가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안다. 때때로 옛 맛이 그리운 건 나이를 먹은 탓일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2.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3.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