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재미들로 한 회 한 회 드라마를 보던 중, 충격적 반전이 드러났다. 사실 70대 혜자는 '시간여행자'가 아닌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였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동안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던 설정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의족을 한 채 경비일을 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혜자의 아빠는 사실 아들이었다. 기억을 잃어가며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70대 노모와 그녀를 바라보던 측은한 아들의 눈빛.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삶. 드라마의 내용은 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사랑했던 남편을 고문으로 잃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사고로 다리를 잃은 혜자의 삶은 객관적 시선으로는 '불행한 삶'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혜자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아들의 질문에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다"고 이야기한다. 밥솥에 밥을 앉히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그저 그런 날들이 행복했다고.
우리에겐 날마다 소중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너무나 평범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학창시절엔 날마다 가야하는 학교가, 공부가 하기 싫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빛났던 순간인지를. 우정과 사랑, 이런저런 고민들로 눈물짓던 10~20대는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됐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육아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얼마 전 워킹맘인 지금이 너무 힘들다고 친정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엄마역시 30대 시절 나와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일을 하며 '일주일만 어디로 떠나고 싶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가 가장 그립고 행복했다고 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름진 얼굴의 혜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삶이 한 낯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사랑하세요. 눈이 부시게."
서혜영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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