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자랑스러운 이병 계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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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자랑스러운 이병 계급장

서옥천/ 수필가

  • 승인 2019-03-29 09:3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친구들은 자녀 결혼시키고 손자 손녀 자랑하느라 바쁜데 난 이제야 늦둥이 아들이 입대했다.


5주 정도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 날 연천 5사단 연병장에서 남편과 함께 이병 계급장을 달아주고 왔다. 오는 내내 훌쩍거리다 남편의 핀잔을 여러 번 들어야 했다.

 

수신자부담으로 군부대전화를 받으니 자대에 배치된 아들의 첫 전화였다.

 

‘엄마!’ 아들의 목소리 듣는 순간 말도 못 하고 그냥 눈물 콧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었다. 아이가 놀라 엄마를 연거푸 부르는 소리에 겨우 눈물을 멈추었다.

 

‘엄마 진정하시고 메모지 준비하세요’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대 주소를 불러주고 간단한 인사 후 동기생들도 전화하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금방 전화를 끊는다.

 

걸려온 전화에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우리 아들을 사랑했었나 놀랍기도 하고 허전함이 가득했다. 엄마 마음을 아는지 주말이면 거르지 않고 목소리를 들려주더니 어느 날 편지가 왔다.

 

“엄마! 제 전화 받으실 때마다 울먹울먹 그만 좀 하세요. 제가 죄를 지어 붙잡혀 온 것도 아니고 엄마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힘들거나 위험하지 않아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편지를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맞아, 신체 건강하여 입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무슨 잘못으로 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다니 무조건 기분 좋게 받으리라 다짐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함께 한 시간이 별로 없어 늘 마음에 걸렸나 보다.

 

시절이 좋아진 탓에 5주간의 훈련 기간엔 인터넷을 통한 스무 줄 정도에 편지 발송이 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림없는 일이다. 담당자가 매일 출력하여 저녁 점호시간에 전달해 준다고 한다. 늘 하는 말은 동기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안전규칙 준수하라는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내면서 보고 싶은 마음 많이 달랬다. 아침이면 그날의 훈련 일정도 알 수 있고, 20kg의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하고 내일은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하는 화생방 훈련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름도 무서운 수류탄 투척 훈련하는 날은 모든 장병의 안전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 많은 장병의 하루 세끼를 책임지고 가스 불 앞에서 땀 흘리는 병사 덕분에 영양소가 골고루 갖추어진 음식과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아들이며 남편이고 아빠였을 장병들이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할 정도로 고마운 일이다.

 

2년 정도의 기간임에도 까마득하니 울컥울컥 그립고 보고픈 아들이거늘 예전 부모님은 3년 동안 어떻게 견디셨을까.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3년 무렵 집안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던 오빠가 입대했다. 아버지의 사고로 남편처럼 믿고 의지하던 장남이 입대하고 나니 엄마는 늘 눈물을 글썽이셨다. 지금처럼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오로지 편지만이 연락수단이었다.

 

엄마는 글이 서툴러 편지 쓰는 것은 나의 몫이다. 편지를 써 본 적이 없는 나도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디서 들었는지 편지 첫 줄은 무더운 삼복더위니 엄동설한이니 거창하게 시작한다. 항상 몸조심하고 저는 엄마 말씀 잘 듣고 동생과 잘 지내고 있으니 집 걱정은 하지 말라고 쓰고 나면 할 말이 없다.

 

늘 비슷한 내용을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큼지막한 글씨가 편지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하고 보냈다. 연필로 쓴 봉투가 창피했는지 가끔은 뒷집 대학생 오빠에게 봉투 대여섯 장을 들고 가서 잉크로 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글솜씨가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편지 쓰는 일은 여전히 버거웠다. 스스로 마음이 동하여 보낸 적이 없으니 엄마는 애가 탔을 텐데 글로 표현할 줄도 모르고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땐 늘 눈물짓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내 아이를 군에 보내고 보니 이제야 엄마의 애틋한 심정을 명치끝이 아플 만큼 헤아리게 되었다. 생존해 계셨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을 만큼 죄스럽다.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36개월 동안 매주 한 통씩 꼬박꼬박 보내오던 오빠에게 띄엄띄엄 성의 없이 보낸 편지가 너무나 미안하고 짠하다.

 

가족의 면회 한 번 받아본 적 없이 어린 여동생의 삐뚤삐뚤 연필로 쓴 편지가 전부였던 그 푸르고 싱싱했던 오빠는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훌륭하게 성공을 거둔 칠순에 노신사가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오빠가 계셔서 더없이 고맙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성의 없이 보낸 편지는 정말 죄송했노라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다.

 

편지지 한 장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편지 쓰기를 힘들어하던 초등 3년생은 어느새 이병 아들에게 편지지 서너 장을 순식간에 써 내려가는 예순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낙이 되었다.

 

아들이 두 번째 보내온 편지다.

 

“요즈음은 대부분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는 편이라 편지 쓰는 동기들이 거의 없어요. 혼자 편지 쓰기가 그래서 좀 늦었습니다. 엄마도 힘들게 편지 쓰지 마시고 그만 보내셔도 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 건강 먼저 챙기세요. 전화 자주 드리겠습니다. 군 생활 잘하고 자랑스럽고 멋진 모습으로 전역하겠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이병 아들 위로한답시고 월요일마다 손 편지 한 통씩 몇 번 보내지도 않았는데 그만 보내도 된다고 하니 진심인지 아니면 위로가 되지 않았나 보다.

 

읽고 또 읽고 그렁그렁 눈물 안경을 쓰고 다시 읽어 보니 이병 아들이 보내온 엄마 위문편지였다. 

 

서옥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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