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역사를 있다 한다면 역사 날조다. 있는 역사를 방관한다면 역사 유기다. 부끄럽게도 오래전 편찬된 자료이지만 알지 못했다. 하지만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KBS에서 만세지도가 만들어지면서 이제야 알게 됐다. 그동안 우린 역사 유기를 해왔던 것이다. 그것이 3·1운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것처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국가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알려 나가야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독립만세운동을 알려 나가야 한다.
우리 중구는 이처럼 뜻깊은 지역인 선화동을 비롯해 그 주변 지역에 일제 수탈과 억압 장소들이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옛 충남도청, 무덕전, 대전형무소, 영렬탑, 대전공립중학교, 조선군 보병 80연대 3대대, 조선군헌병대 대전분대,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 대전 신사, 대흥동 관사촌 등이 그런 곳이다.
옛 충남도청은 조선총독부 건축과 건축기사였던 이와스키 센지(岩槻善之)와 사사 게이이치(笹慶一)가 설계한 건물로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일제통치 및 탄압기구였다. 이 곳 옆에 있었던 무덕전은 도청사 방호 등을 위해 주둔했던 일경(日警)들이 주로 검도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기단만 남기고 모두 전소됐다.
대전형무소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계속되면서 독립투사들을 수감하기 위한 시설이 부족하게 되자 만들어진 곳으로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곳이었다. 광복 이후 대전교도소로 이용됐으나 1984년 이전과 함께 도시재개발로 이제 망루와 우물터만이 남아 있다.
영렬탑은 1942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충혼탑으로 지어졌던 곳이다. 당초 용도는 일본군의 위패를 두기 위한 것이었으나,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실제 사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2013년 공원조성계획에 의해 철거된 상태다. 대전공립중학교(1951년 학제개편에 의해 대전중과 대전고로 분리됨)는 실질적으로는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로 운영됐으나 한 학년에 열 명 정도 조선인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민족의식 각성을 위해 비밀조직 선우회가 결성됐으며 일제 노동착취에 항거해 공장파업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의 시설들은 한국전쟁 중 대부분 전소됐다.
많은 곳이 이제 없어지거나 흔적을 찾기 어렵고 아는 사람도 드문 것 같다. 그나마 가장 대표적 탄압기구인 옛 충남도청 만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독립만세운동과 일제 수탈의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교육되고 체험돼야 한다. 선화동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해 수백 명이 일제에 항거한 4월 1일을 기억해야 한다. 민간 주도의 소녀상 건립도 필요하다. 일제탄압의 상징적 공간인 옛 충남도청 뒷길에 독립운동가 거리와 홍보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더욱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탄압받고 고문당하고 희생하신 분들의 높은 절개와 나라사랑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 유기를 하지 않는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돼야 한다.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