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이사장 |
TV에서 후배나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며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며 희화화할 때마다 나도 혹시 하고 뜨끔하곤 한다. 최근에는 꼰대 감별법이라는 것이 인터넷에 돌아다녀 테스트해 보니 '꼰대의 기질이 서서히 자라고 있다'라고 나와 혼자 민망했던 적도 있다.
혹자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배울까 걱정하기도 한다.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고 가르쳐야 사회가 발전하는데 모두가 나서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속으로는 꼰대인데 굳이 "나 꼰대"라고 나서서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져 가는 것이 더 문제는 아닐까? 어쩌면 이런 발칙한 생각 때문에 나의 꼰대 기질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씁쓸하다.
요즈음 대학생들이 많이 쓰는 신조어인 '인싸'는 무리에서 잘 섞여 놀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인싸는 인싸이더(insider)의 준말인데, 반대로 무리와 잘 섞이지 못하고 밖으로만 겉도는 사람을 ‘아싸’(outsider)라고 한다. 인싸가 핫한 이유는 아싸가 될까 봐 두려운 심리 때문이라 생각한다.
‘Daum’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새 학기의 긍정·부정 감성어 비율은 2014년 긍정 55%, 부정 45%에서 2018년 긍정 47%, 부정 53%로 부정 감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신입생들이 새 학기 스트레스가 높아짐에 따라 본능적으로 무리 안에 들어가려는 움직임 속에서 인싸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은 아닐까? 개학 시즌인 요즘 '새 학기 인싸가 되는 법', '인싸 테스트' 등의 게시글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학 생활에서 이러한 인싸 놀음은 길어봐야 2학년까지다. 남성은 기껏해야 입대 전까지인데, 군대 갔다 복학하면 기존 인맥의 상당수는 끊겨있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도 고학년이 되면 다들 성적 향상과 취업 준비에 바빠 자연스레 친한 친구 둘, 셋이서만 뭉쳐 다닌다.
최근에는 대학보다 직장 내 인싸·아싸 논란이 더 거세다. 직장 내에서는 아싸가 되는 순간 승진 등 인사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인싸가 되려고 더 노력한다. 주말 야유회에 빠지지 않기, 직장 회식 자리 반드시 참석하기 등이 직장 내 '인싸'로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이다. 직장 내 인싸 놀음은 기한이 없고 생존용이라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문제는 내 편, 네 편으로 편을 가르는 패거리 문화가 직장 내에 싹틀 때 더욱 심해진다. 이 경우 미생들은 더 큰 권력을 가진 그룹에 들어가 인싸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게 된다. 대학생의 인싸·아싸 구분은 젊은 한 때 그들끼리 무리 지어 어울리는 문화로 또는 인스타그램에서 유행 따라 센스를 뽐내는 놀이 정도로 귀엽게 봐줄 수 있지만, 직장에서는 승진과 평가 등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없애야 하는 암적인 존재다.
회사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화에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회 초년생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정에서는 좋은 대학 합격이라는 결과만을 강요하고, 학교에서는 학생 인권 문제로 훈육을 꺼린 결과다. 그러면 직장에서라도 선배나 상사가 기관의 미션과 비전, 기본 지식, 책임감, 협업 문화 등에 대해 가르쳐야 하나 잘못하다가는 꼰대로 치부될 수 있으니 되도록 끼어들지 않으려 해서 문제다.
아무래도 더 살아본 선배의 눈에는 신입의 허술한 면이 쉽게 보여서 충고랍시고 잔소리를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꼰대라 치부하니 할 말 하는 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꼰대라 흉보고, 살기 위한 인싸를 강요하는 사회는 결코 성숙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라도 소신 있는 꼰대 기질을 키워볼까 한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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