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지랑이로 만나는 풍속화 '야묘도추(野描盜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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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지랑이로 만나는 풍속화 '야묘도추(野描盜雛)'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03-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야묘도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노란 병아리 무리 거느리고 암탉이 나들이 한다. 앞마당, 남새밭 땅을 긁으며 병아리에게 먹이를 찾아 주고, 쪼아서 다듬어 주는 모습이 정겹다. 새 생명의 힘찬 약동이 물씬 느껴진다. 한가롭고 평화롭다. 온 몸으로 봄을 함께 나누다 보니 문득 풍속화 한 폭이 머리를 스친다. 조선말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 ~ 1822)의 '야묘도추(野描盜雛)'이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는 그림이다. 정적을 깨트리니 '파적도(破寂圖)'라고도 한다.

버선발에 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으니 역시 이른 봄인가 보다. 나뭇가지에도 봄이 막 피어나는 모습이다. 훈풍이 불어오니 자리틀 들고 마루로 나와, 난간에 세워 놓고 자리를 짠다. 장죽에 봉초를 꾹꾹 눌러 넣고 담배 피우며 쉬고 있었나 보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 쬐는 앞마당, 닭 일가족이 산책중이다. 암탉이 병아리에게 먹이를 찾아주기도 하고 돌보기도 한다. 갑자기 나타나 무리를 덮친 검은 고양이, 병아리 한 마리 잽싸게 물고 달아난다. 놀라 도망치는 병아리들, 허둥대며 흩어지는 모습이 황망하다. 암탉이 가로 막고 나선다. 꼬꼬댁 소리지고 푸다닥 활개 치며 사납게 달려든다. 순박하고 나약해 보이던 어미닭의 돌변한 모습, 자식을 기르고 돌보며 지켜내는 자연생태계의 생리를 깨닫게 한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에 화들짝 놀란 사내, 자기 몸 돌볼 겨를도 없이 장죽을 내리친다. 자리틀, 자재, 집기들도 나동그라진다. 여인도 황급히 따라 나선다. 넘어지는 사내를 잡아채려는지, 함께 고양이를 쫓는 것인지, 다급하긴 마찬가지다. 마루에서 막 내려서고 있다. 평화롭고 고요하던 집안이 난리법석이다. 정적이 깨진 급박한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역동적인 구도와 표현이 돋보인다. 자리틀 양쪽에 놓인 물건도 동세를 도와준다. 인물 크로키(croquis)가 놀랍기만 하다.

200여 년 전 그림이다. 그럼에도 그림 속에 등장한 모습이 필자에게는 낯설지 않다. 어린 시절 생활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리 짜기는 초가을부터 이른 봄, 농한기에 한다. 고드랫돌로 돌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쇠로 된 것을 사용했다. 그림은 자연석으로 된 고드랫돌로 보인다. 고드랫돌로 왕골, 골풀 등을 엮어나가, 엮은 줄이 밖으로 보이는 것은 자리라한다. 줄은 주로 모시를 꼬아 만든 노끈을 사용한다. 돗자리는 가마 짜는 것과 비슷하게 날줄을 위에서 아래로 매 놓고 줄 사이로 왕골을 가로질러 엮어 나간다. 엮은 줄이 보이지 않는다. 자리나 돗자리를 만드는 재료는 동일하다. 엮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문양이나 용도에 따라 화문석(花紋席:꽃돗자리), 용문석(龍紋席), 별문석(別紋席), 호문석(虎紋席), 난초석(蘭草席), 굴피자리, 갈자리, 포석(蒲席), 망석(網席) 등 다양하게 불린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하면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김홍도(金弘度)와 신윤복(申潤福)일 것이다. 능히 견줄만한 사람이 있으니 김득신이다. 선배 화원 그림에 영향을 많이 받았나보다. 모사한 작품도 보이고 유사점도 많이 보인다. 물론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중 한명으로 불린다.



묵화는 아무래도 여백이 생명이다. 생략을 많이 한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특징은 배경 묘사이다. 산수화 필치에 인물을 넣는다. 남겨진 작품을 통해 김득신이 다양한 분야에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풍속화와 인물화에 능했다. 김득신의 풍속화는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것보다 배경이 좀 더 소상하다. 당시의 생활도구나 격식을 알아볼 정도이다. 당시의 화풍을 따랐으나 해학적분위기와 정서가 돋보인다.

김득신은 도화서(圖畵署) 작가이다. 순수회화보다 기록물을 그리는 일을 한다. 어진 제작, 각종 행사를 그리는 등 나라의 일체 화사를 담당한다. 고려시대부터 도화원이 있었고 조선시대 중기 무렵 도화서로 개칭된다. 죽(竹), 산수(山水), 인물(人物), 영모(翎毛), 화초(畵草) 중 두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보기도 했다. 과목마다 통과 약을 두어 더했으므로 모두 다 잘 그려야 한다. 실력에 따라 직분이 상승하는 것이다. 조선 말기로 오면서 30여명의 화원을 두었다. 우리가 잘 아는 안견, 김홍도, 신윤복 등 모두 도화서 출신이다.

김득신은 화원 명문가문의 자손이라 할 수 있다. 김홍도의 선배로 알려진 김응환(金應煥)이 숙부이며 역시 화원인 한중흥(韓重興)의 외손자이다. 동생인 김석신(金碩臣), 김양신(金良臣), 아들인 김건종(金建鍾), 김수종(金秀鍾), 김하종(金夏鍾) 등이 모두 화원이었다. 화업을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국가 기관에 종사한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 않을까 한다. 작품은 꽤 많이 전하나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참고자료에 의하면 대표작으로 「파적도(破寂圖)」(간송미술관 소장), 「긍재풍속화첩」(간송미술관 소장), 「귀시도(歸市圖)」(개인 소장),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개인 소장), 「풍속팔곡병(風俗八曲屛)」(삼성미술관 리움), 「신선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등을 꼽는다.

역사는 빼기라 한다. 세월이 갈수록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했으나,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다. 크기에 비례하여 좀 더 길게 남을지 모르나, 대개는 결국 사라지고 만다. 모든 생명체는 오로지 자식을 통하여 살아남을 뿐이다. 허명에 매달려 세월을 탕진하기보다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에 진력할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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