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비싼 소고기를 산 후배였기에 미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2차는 내가 낼게." 노래방으로 가서 술과 노래에까지 함몰되었다. 위에서 말한 '주님 영접'이란 종교적 의미가 아니다. 다만 우리 같은 주당들이 즐겨 인용하는, 술(주(酒))을 영접(迎接)한다는 뜻이다.
술자리에서 후배는 언젠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필자가 위로해주고 술까지 사줬던 걸 기억해냈다. "뭘 그까짓 걸 가지고..." 말은 그리 했지만 고마움을 아는 후배가 새삼 더욱 살가웠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던가.
처음으로 술자리를 같이 하였으되 후배의 친구 역시 예의가 바르고 시종일관 겸손하기에 마음에 쏙 들었다. "형님,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다음엔 제가 사겠습니다!"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무언가를 산다는 건 즐겁다. 반면 얻어먹으면 빚을 진 느낌인지라 마음까지 불편하다.
우리 한국인들은 '통이 크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밥을 사고 술까지 낸다. 반면 '쩨쩨한' 일본인들은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내는 이른바 '와리깡 문화'가 여전하다. '더치페이', 즉 '와리깡(割り勘)' 문화라고 하는 일본 특유의 '자기부담'이라는 현실은 냉정하다.
예컨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도 두 명 이상이면 돈을 무조건 사람 수만큼 나눠서 낸다. 심지어 1엔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나누는 게 원칙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모임이 끝나고 계산서가 나오면 테이블 위에 10엔짜리, 1엔짜리 동전을 올려놓고 여럿이서 동전을 세서 나누는 진풍경을 낳기도 한다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물론 그것은 일본인들의 오래된 습관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리 한다면 얼마나 정나미 떨어지는 모습일까! 오늘 아침(3월 14일)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울한 제목과 만났다. [실직자 몰린 건설일용직도 '한파'… "한 달에 열흘만 일해도 행운"] 내용은 이랬다.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일터에서 밀려난 장년층 근로자의 상당수는 단순노동 등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나마 건설 경기가 악화되면서 이런 저임금 일자리를 따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고용의 양과 질이 한꺼번에 나빠지는 모습이다. (중략) 막노동 생활만 38년을 해온 조모 씨(58)는 "이젠 한 달에 열흘만 일해도 행운"이라고 말했다. (중략) 불법 체류 중국인이 늘어난 것도 건설일용직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동포들마저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불법 체류 중국인 때문에 일감 찾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중국동포 최모 씨(58)는 "관광비자를 받아 온 중국인들은 일당을 6만 원만 줘도 일한다"며 "우리는 최소 10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그런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중략)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노동시장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가장 먼저 빼앗아 간 것이다." - 이어진 기사에서 중국 인부들은 제대로 된 기술도 없이 돈만 적게 받는 까닭에 심지어 '개목수'라는 욕까지 듣는다고 했다.
순간, 지금도 막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친구가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지난달의 모임에서 만난 그 친구는 몇 달 째 일이 없어 논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노는 날이 지속되다보니 아침부터 홧술만 마시는 날도 비일비재하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술을 그렇게 마셔대면 일찍 죽는다!" 필자의 겁박(?)에도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친구의 모친께선 작년에 타계하셨다. 어렸을 적 필자가 찾아가면 꼭 그렇게 먹을 걸 챙겨주셨던 또 다른 어머니셨는데……. 뿐이던가, 선친의 주사가 심하여 도망 잠을 잘 적에도 그 어머니의 신세를 지기 일쑤였다. 그 은공이 고마워서라도 조만간 친구를 불러야겠다. 그리곤 보양식을 사주고 싶다.
한데 문제는 그 친구 역시 필자처럼 '골수 주당'인 까닭에 정작 음식과 안주보다는 술을 더 탐한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세상사의 이치란 건 풍선효과가 작용한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배신의 부메랑이 되었다. 자영업자와 알바(학생)들도 손님과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정부에선 그 누구조차 사과를 하는 이가 없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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