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잘 늙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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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잘 늙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 승인 2019-03-18 16:08
  • 신문게재 2019-03-19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이동구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물 중 으뜸은 냉이와 달래다. 언 땅을 뚫고 눈 속에서도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가 복수초와 노루귀라면 나물 중에는 냉이가 그렇다. 엄동설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깔보는 풀이라 하여 옛사람들은 냉이를 능동초(凌冬草)라 불렀다. 냉이는 간 기능을 보하고 피를 맑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 씁쓸한 맛이 강하지만 씹다 보면 끝에는 고소한 맛이 감돈다. 요리에 한 뿌리만 넣어도 산뜻한 향이 진하게 풍긴다. 요즘과 같이 삭막하고 인심이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선 냉이 같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창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서울 세검정에 있었다. 앞뒤 정원에는 많은 나무가 그늘을 제공하고 사시사철 온갖 꽃들이 피어서 보기에 참 좋았다. 봄에는 붉디붉은 영산홍으로 눈이 호강하였고, 가을엔 짙은 국화 향기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아버지가 지극정성으로 가꾼 매발톱꽃과 금낭화, 은방울꽃, 용담, 초롱꽃, 수선화, 앵초, 돌단풍꽃 등 앙증맞은 야생화 모습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버지가 선종하신 지 1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아버지와 함께 예쁜 꽃을 심던 추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잔디정원 한 귀퉁이에서는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바로 달래다. 처음엔 잔디와 비슷해 구별하기가 힘들었지만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달래를 한 움큼 캐어 어머니께 가져가면 손맛으로 무쳐주신 달래의 알싸한 맛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달래 알뿌리의 얇은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밭에서 호미로 흙을 뜬 다음 살살 달래가며 캐야 하는 달래는 가늘고 잎이 연하다. 달래는 독특한 맛과 향취로 예로부터 강장식품으로 알려졌다. 칼슘, 인,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빈혈을 없애며 노화를 방지한다.

봄이면 냉이와 달래가 어김없이 식탁으로 달려오듯이 누구에게나 곧 노년의 삶이 닥쳐온다. 매일 익숙한 일상만 살다 보면 외부의 시간 감각도 의미 없이 빠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 집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습관이 주는 편안함을 이기는 것에서부터 잘 늙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려면 새로운 관계 맺기가 매우 중요하다. 얼마나 행복하는냐의 척도는 '관계'다. 다양한 연령층과 어울리는데 적극적인 관계 중심적인 사람일수록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깊은 성숙을 향한 여정이다. 삶의 단계는 다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비록 젊은 시절의 원초적 환희는 아니겠지만 노년에 접어들어도 여전히 새롭고 진정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노년에 일이 없으면 매우 불행하다. 늙는다는 것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성장이 지속되며 성장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야겠다. 노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달라진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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