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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지음 | 미디어창비
"오른손잡이로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부터는 왼쪽의 삶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겠다. 서툴고 느리고 두렵고 어색할 테지만 왼쪽 길에도 역시 도전할 만한 뭔가가 있지 않겠나." - 본문 중에서
닭장에서 알을 낳기로 정해진 암탉 잎싹이 닭장을 나와 자신의 알을 품고 자신만의 새끼를 위해 모성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마당을 나온 암탉』. 한국 창작동화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만큼 주목받은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다 관객인 220만명을 동원했다. 2014년에는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 작품 최초로 영국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 암탉 이야기를 부화시킨 작가 황선미 역시 같은 해 런던 도서전에서 '오늘의 작가' (Author of the Day)로 선정되는 등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독자들에게 뛰어난 동화작가로 잘 알려졌던 황선미 작가가 "서울에 사는 중년 여성, 희생을 강요받았던 장녀,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허점투성이, 잘 나서지 않으나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이 큰 여자, 콤플렉스 덩어리"인 자신을 온전히 기록하고 나왔다. 작가 자신의 몸을 둘러싼 고백, 환희와 고통 그 사이를 오갔던 어린 시절, 이방인으로 보낸 고독한 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랑받는다고 느낀 적 없게 했던 엄마의 모습은 그의 자아를 웅크리게 하고 외롭게 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 스스로를 다치게 했던 일, 자꾸만 도지는 입병과 완전히 망가진 오른쪽 몸 때문에 웃을 때조차 감정 밑바닥의 우울감이 건드려지던 하루, 평생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으나 사회에서 내린 신용 부적격자라는 결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어른의 말 때문에 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어린 날들이 있었다. 모든 일이 꼬이기만 하던 해외 취재 현장에서는 뜻밖에 동화의 마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글쓰기가 전부인 한 외로운 어른 아이의 일기장이 글마다 고스란히 옮겨졌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처럼, 작가도 동화작가의 틀을 벗어나 또 다른 공감으로 글의 영역을 넓혔다고 봐도 좋겠다. 익숙한 길의 왼쪽, 아직 가지 않은 방향을 향해 세상 앞으로 한걸음 더 걸어보자고 독자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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