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서림의 정경수 변호사 |
정경수 변호사의 달력은 까만 글씨로 빼곡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다누리콜센터 자문변호사, 대전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법률지원위원 등 재판 외에도 다양한 단체의 법률 자문을 맡으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정 변호사의 목소리엔 생기가 넘쳤다.
'여성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도맡아 왔고, 앞으로 더 많은 후배가 함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고 싶다는 정경수 변호사를 만나 여성 법조인으로서의 활동상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여성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개업변호사로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과 업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가끔 의뢰인과 변론 방향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위협을 받거나 여성 비하적인 말을 듣는다. 그럴 때는 두렵기도 하고 변호사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전남 여수 출신으로 한양대를 졸업했는데, 대전 동구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대전 동구 토박이인 남편 덕분에 '동구의 며느리'가 됐다. 여수에서 나고 자라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사법시험 공부를 하던 중, 같은 과 선배인 지금의 남편(정보건 변호사)과 만났다. 이듬해 가을 남편이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결혼했고, 서울 신림동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 남편이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고향인 대전에 내려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해 망설임 없이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현재도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시댁 가족 모두 동구에 거주하고 있다. 20년간 가족과 모여 사는 대전이 '제2의 고향'이 됐다. 최근엔 대전 원도심 주민들과 상인들에게 더 가까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전역 맞은편에 로펌 분사무소를 마련했다.
-지역변호사 최초로 대전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했는데, 활동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2010년 3월 대전지법 가정지원의 가사조정위원으로 위촉됐다. 대전 변호사 중에는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도 가사조정위원을 하고 있는데, 맡았던 사건만 수백 건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아이 4명을 둔 부부의 이혼조정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경제적으로 힘들면서도 남편에게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았고, 남편은 양육비를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당사자 의사가 그렇다면 바로 조정이 성립될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양쪽을 오랜 시간 설득해 양육비를 받게 해줬다. 큰 쟁점은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도 아이 넷의 양육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얼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주여성 긴급지원센터(다누리콜센터) 고문변호사를 맡은 적도 있는데, 결혼이주여성들은 주로 어떤 법률적 어려움을 겪는지.
▲다누리콜센터 자문변호사는 2013년부터 맡았고 대전시 다문화가족지원협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결혼 이주여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소통'이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법률상담이나 소송 준비를 할 때 통역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크다.
또 이주여성들은 언어 문제로 대부분 저임금 단순 노동에 종사해 소송비용을 마련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누리콜센터의 통역 지원과 법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에 마련된 소송 구조제도를 적극 안내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제때 제대로 된 법적 도움을 받기 어렵다. 법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제도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다양한 홍보와 한국어 교육 활성화가 필요하다.
-최근 이혼소송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주로 쟁점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과거 이혼소송은 서로 싸우고 갈등만 더 부추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혼소송으로 상처만 남기고 이혼 후 자녀들에 대한 면접교섭, 친권행사 등의 문제 등으로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이혼소송은 조기 조정절차, 이혼 전 부모교육 의무화, 자녀상담 등 갈등은 줄이고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이런 경향은 이혼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이혼 후 예상되는 다양한 법적 분쟁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 이혼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양육비 지급 문제다.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은 후 강제 집행절차가 없어 강력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나 입법기관에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성 법조인으로서 계속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려고 노력 중이다.
- 성폭력 소송에서 여성 피해자가 2차 피해를 호소하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성 관련 소송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있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누설을 금지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수사·재판절차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심리를 비공개하게 돼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각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비밀누설에 대한 형량을 더 높이고 처벌규정에 대한 홍보도 강화해야 한다. 또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는 자극적이거나 흥미 유발적인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언론에서도 노력해야 한다.
-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출강한다고 들었다. 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다 보니 수임 사건을 늘리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거나 징계를 받는 사례가 많아졌다. 때문에 법조인으로서 품위와 사명감, 직업적 윤리의식을 갖추는 길이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가장 노력한다.
- 일하는 엄마, '워킹맘'이 흔하지 않은 때부터 변호사 활동을 해왔는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떻게 유지했는지 궁금하다.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개업 변호사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보통의 워킹맘과 같이 힘들다. 다행히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이 많이 이해해줬고, 특히 양육과 관련해선 많이 대화하고 분담했다. 출산 이후 양육은 부모가 협력해야 아이가 성 역할에 대한 편견 없이 잘 자랄 수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했고, 남편도 그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고맙게도 실천해줬다.
-최근 법조계를 배경으로 하거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영화가 많다. 자신과 가장 비슷하거나 현실성 있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친구가 영화 '더킹'을 보고 영화 속 여자 검사와 제가 닮았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호기심에 영화를 봤는데, 정말 비슷했다. 그 여자 검사가 "검찰 역사상 이런 쓰레기들이 있었습니까? 쪽 팔려서 검사하겠습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변호사-검사로 직역은 다르지만, 평소 '사이다 발언'을 자주하는 제 성격과 정말 비슷해 웃으면서 영화를 봤다. 법정에서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꼭 하는 성격이다.
-대전여성변호사회 회장이면서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여성 변호사로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우선 대전 지역 여성 변호사들이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지혜를 나눌 수 있도록 유대관계 형성에 힘쓸 것이다.
대전 여성 변호사들은 인권보호와 시민에 대한 봉사 열정이 강하다. 이들이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대전의 다양한 인권단체, 사회단체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또 지역 여성 변호사들이 세종에 입주한 정부기관의 각 위원회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
대담=윤희진 경제사회부장·정리=조경석·사진=이성희 기자
-정경수 변호사는 누구?
▲한양대학교 법학과 졸업
▲충남대학교 대학원 특허학과 수료
▲2005년 제47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37기)
▲충남도 행정심판위원
▲대전시 행정심판위원
▲충남도 규제개혁위원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다누리콜센터 자문변호사
▲대전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법률지원위원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출강
▲대전시 규제개혁위원
▲대전시 다문화가정지원협의회 위원
▲대전여성변호사회 회장,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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