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할 말이 없어서 하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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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할 말이 없어서 하는 질문

전유진 편집부 기자

  • 승인 2019-03-13 14:19
  • 신문게재 2019-03-14 22면
  • 전유진 기자전유진 기자
전뉴진
커피로 잠을 쫓고 있는데 느닷없이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부에 뜻이 있어 대학원으로 진학했지만 진로를 틀어 취업을 하기로 한 친구였다. 그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하면 안 되는 질문과 조언'에 대해 규탄했다.

"친척들이 대학원 마치면 뭐 할껀지 물어보더니 요즘은 도대체 취업은 언제 되는지 물어봐. 졸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잖아."

"남자친구가 있는지, 걔가 직업은 뭐고 얼마 버는지 도대체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나랑 무슨 상관이지?"

"면접관이 이력서 그만 쓰고 이참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래."



떠올려보니 나 역시도 받아본 질문들이었다. 맞장구라도 쳐주기 위해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때로는 별 생각 없이, 때로는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답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

누구든 내 친구에게 오랜만에 또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몇 번 만나보고 서로 관심사를 알아가며 일상 속 감정을 공유하다 보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내용인 탓이다. '어디에 취업했니'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언제 가질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면 알아볼 방법도 많다. 이도 저도 아닌 질문과 조언을 곧장 쏟아낸다는 것은 '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 없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얼추 짐작해보고 참견하고 싶다'고 드러내는 꼴이다.

우리는 친척들을 잘 모른다. 예전처럼 대가족을 이루어 한 집에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1년에 한두 번 보기도 힘들다. 피를 나눴다고는 하지만 데면데면한 사이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한다. 이력서를 받아든 면접관도 마찬가지다. 같이 일하게 될 사이라도 서류에는 굳이 알 필요 없는 내용도 수두룩하다. 이름, 나이, 사진은 물론 가족들의 직업, 학력, 연봉까지 쓰는 칸도 버젓이 자리한다. 만나기도 전에 시시콜콜 알게 된 만큼 물어볼 내용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밀한 개인정보를 알게 된다고 해서 한 사람 인생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착각이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어느 곳이든 기관장이 새롭게 부임하면 취임사에는 어김없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입사지원서에도 소통을 잘 하는 지 써야 한다. 그만큼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반증한다는 의미다.

어렵지 않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처음 보는 친구를 사귀는 과정이라고 여기자. 그 사람의 하루를 물어보고, 관심사를 궁금해 하고, 요즘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는지 나눠 보자. 만나자마자 편하게 알아가기는 어렵다. 천천히 다가가되 잘 모르더라도 들어주면 된다. 그러면 대화가 시작되고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서툴더라도 어쨌든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법이니까. 전유진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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