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의 백미는 대웅보전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아담한 자태 속에 들어가보면 뜻밖의 선물을 만난다. 꽃살문의 화려한 문양에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실루엣의 극치라고나 할까. 연꽃, 국화가 새겨진 문살이 어찌나 섬세한 지, 사진으로 본 인도 불교 조각품을 대하는 듯하다. 400년 전 이 나무에 하나하나 꽃을 조각한 장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행하는 싯타르타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불심으로 정진했을까. 기나긴 세월에, 바람결에 닳은 꽃살문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꽃살문을 어루만지며 오래 전 장인의 손길을 더듬어본다. 그 옛날에 나무에 꽃을 새기던 장인의 거칠고 투박한 손과 맞닿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모처럼만에 맑은 공기와 봄 햇살에 맘껏 몸을 맡겼다. 대웅보전 주춧돌에 걸터앉아 한참동안 봄볕의 나른함에 취했다. 시간이 멈춘 듯, 다만 아이들의 티없는 웃음소리가 현실의 나를 일깨웠다. "아, 따시다." 노구를 이끌고 법당을 둘러보던 한 노인이 햇살 아래로 나오며 말했다. 꽃말이 '영원불멸의 사랑'이라는 산수유꽃도 피었다. 붓다의 자비는 영원할까.
일주일 전 위장에 탈이 나서 며칠 앓아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날 때 현기증이 났다. 미세먼지, 한파가 번갈아 오는 바람에 지난 겨울 통 운동을 못했었다. 겨우내 1kg 찐 살이 아프면서 도로 빠져버렸다. 밥을 먹어야 어깨가 펴질 것 같았다. 내소사 일주문에서 나오자 음식냄새가 진동해 코를 벌름거렸다. 입으로야 파전에 막걸리 한잔 쭈욱 들이켜고 싶지만 산채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고사리, 버섯, 콩나물, 시금치 등 온갖 나물과 계란 프라이가 얹힌 대접에 밥 한 공기를 통째로 넣어 비볐다. 그리고 배추 된장국을 한 술 떠먹었다. 아! 구수한 된장냄새. 요번에 체하고 배탈난 날 저녁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을 때 멸치·표고버섯가루와 대파만 넣은 맑은 된장국을 끓여 마셨다. 그리고 이틀동안 된장으로 끓인 시금치죽으로 속을 다스렸다.
된장으로 만든 음식은 다 좋다. 일단 속이 편하다. 김치찌개보다 된장찌개가 맛있고, 여름날 엄마가 해 주던 된장 수제비는 잊을 수 없다. 앞뜰에 심은 호박잎과 애호박을 손으로 뜯어넣고 청양고추 쫑쫑 썰어 넣은 된장 수제비는 엄마의 별미였다. 달착지근한 일본 미소된장보다 깊은 맛이 나는 우리 된장이 내 입맛에 맞는다. 비빔밥을 먹으면서 배추된장국을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된장국이 맛있다며 직접 담그냐고 물으니까 "네"하고 휑 가버렸다. 순간 머쓱했다. 혹시 식품회사에서 파는 된장에 마법의 조미료를 넣었나? 아니면 말린 바퀴벌레를 갈아서 넣었을 지도…. 그날 저녁 집에 와서 냉이된장국과 달래무침을 해 먹었다. 봄의 향기였다. 지금 산과 들에 쑥이 돋아났을텐데 쑥된장국도 빠질 수 없다.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식욕이 동한다.<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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