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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로만 폴란스키가 연출한 '피아니스트'는 2차 대전의 광기가 유럽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묻는다. 이 영화는 실존인물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가족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고 자신을 도와주던 지인들마저 떠난 폐허의 도시에서 죽음의 공포와 허기, 외로움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스필만.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던 중 독일인 장교에게 들킨다. 직업이 뭐였냐는 장교의 말에 피아니스트라고 하자 장교는 한번 연주해 보라고 한다.
스필만은 마지막 연주가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쇼팽의 '야상곡'. 적막감이 감도는 폐허에서 피아노 선율이 섬세하게 흐른다. 정신과 감성을 집중해 피아노 건반을 터치하는 스필만은 죽음의 공포와 예술가로서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성이 버무려져 쇼팽의 '야상곡'은 나치 장교의 가슴에도 전해진다. 꼼짝도 않은 채 듣는 장교의 눈빛이 감성의 파고에 흔들린다. 옅은 파란 눈동자의 출렁거림. 말하지 않고 눈으로만 감정을 드러내는 명연기. 음악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영화 '피아니스트'. 이 영화의 압권이다.
황폐한 인간을 위무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종종 쇼팽의 '야상곡'을 듣는다. 죽을지도 모르는 한 인간과 죽일 수도 있는 인간과의 교감. 결국 스필만은 장교의 배려로 살아남는다. 가슴을 저미는 '야상곡'이 내 마음의 특별한 음악으로 자리잡은 건 행운이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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