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대전을 방문했다.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로 그는 언론에 등장하지 않고 상업적인 건물을 짓지 않는다.
대신 영혼의 교감, 분위기, 이미지, 상상, 건물을 세우는 땅과 장소의 역사, 건물을 내리쬐는 자연광 등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것들을 연결해 하나의 완성된 공간을 짓는다. 건축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예술로 분류되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복합 예술로 분류해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어떤 배경이 있든, 어떤 사람이든 관심이 없다면 그만이다. 나 또한 몇 명이나 올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대전시립미술관으로 향했으니까.
역시나 문제는 무식함, 아니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날 대전시립미술관에는 페터 춤토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세대 불문, 연령 불문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들리는 얘기로는 대전시립미술관 예약서버가 다운 될 정도로 예약 열기가 뜨거웠단다. “손 한 번만 잡아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관람객도 있었으니, 춤토르를 향한 이들의 존경과 애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담이 이어진 1시간 동안 어떤 잡음도 지루해 하는 사람도,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춤토로의 한 마디에 몸짓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렇게 완벽한 관객이 있을까. 물론 이 자리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겠지만, 춤토르와의 대담은 만족감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그래서 희망을 본 거다.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문화, 사람, 콘텐츠라면 물리적인 거리의 제약을 이겨내고서라도 가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전 방문의 해를 위해 대전시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바로 좋은 콘텐츠를 무한히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것이 신채호, 이응노 일수도 있고, 과학 혹은 좋은 공연장, 새롭게 시도되는 어떤 문화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이응노 화가를 다시 재조명하고 대전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됐다. 이응노 미술작품은 공공시설물로 설치하고, 군상을 모티브로 무용 공연도 준비 중이다.
약 600만개 미술 작품이 데이터 화 된 구글&아트와도 협약을 맺어 이응노 작품을 전세계에 공개할 예정이다. 여기에 이응노를 학문적으로 재조명하도록 연구분야에도 힘을 싣는다. 명실상부 이응노 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대전시의 계획대로 계획대로만 된다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인들까지 대전을 찾아 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춤토르에게 보여준 대전시민의 열정이라면 가능하다. 또 이응노의 작품이라면 대전 속의 세계화를 꿈꾸는 것도 무리는 아닐 수 있다. 결국 사람을 모으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
이해미 교육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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