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도 미술비평가 |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의 작용 때문이다. 중력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선천적인 한계이자 인간 조건을 의미한다. 중력의 보이지 않은 힘을 빗대어 우리는 운명을 필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의 대주제인 '연민과 공포'는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사건 속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비극적 사건에서 선과 악의 경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서 보면 중립적이다. 그래도 남게 되는 단 하나의 악은 인간의 헛된 욕심이다. 한계를 망각한 도덕적 타락과 사리사욕이 비극의 씨앗이다.
인간 개인들의 삶에서 사소한 실수는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에피소드인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인간 정신의 확장성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들이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전 중의 몇 초안되는 순간적인 산만함이 죽음이나 큰 부상을 야기하는 개인의 비극부터 1910년 8월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친일 부역자들에 의해 시작된 식민시대는 개인들뿐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거시적인 비극으로 밀어 넣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됐다. 그리고 '운동'이라는 단어를 '혁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시작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 그리고 국내 친일 부역자들에 저항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활동은 비극이 삶의 온전성을 훼방하지 못하도록 한 저항과 투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5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인 통치를 견뎌왔던 대한민국의 국민과 해방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그분들이 돌아가셔서도 온전히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국가는 상징적인 합의체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생명과 삶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그 존재의 정당성을 가질 뿐이다. 아직도 많은 독립운동가와 일제의 잔학함 속에 명멸해간 개인들이 국가의 보호로부터 소외돼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국가란 무엇인가'와 같은 성찰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김구 선생님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시대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문화는 평화의 시대에 꽃핀다. 더불어 21세기 인터넷 기술이 우리 문화를 평화의 매체로 전 세계에 각인시켜줄 것이다.
정용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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